예수님이 좋아하신 설교자(Jesus’ Favorite Preacher)

제 9 장 (Chapter Nine)

당신은 예수님도 좋아하시는 설교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신 설교자는 루터교, 감리교, 오순절 파, 성공회, 또는 장로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는 침례교였다! 물론, 우리는 그를 세례 요한으로 알고 있다! 예수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상).

모든 사람이 다 “여자가 낳은 자”이므로 이 말의 뜻인즉 예수님이 보시기에 세례 요한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생각하셨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한의 영적 자질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를 높이 생각하셨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이 경우, 우리는 그러한 영적 자질에 대해 공부하고 본받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나는 세례 요한에게서 적어도 7가지 칭찬할 만한 영적 자질을 발견했다. 비록 요한의 사역이 전도자의 사역을 가장 잘 나타내지만, 7가지 영적 자질은 복음의 모든 사역자들에게 적용된다. 먼저 첫 번째 영적 자질을 생각해 보자.

요한의 첫 번째 자질(John’s First Quality)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19-23).

요한은 자신의 소명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였다.

사역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소명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당신이 전도자라면, 목사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교사라면, 선지자 노릇 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좌절감만 느낄 것이다.

어떻게 당신의 소명을 알 수 있을까? 먼저, 당신을 부르신 주님께 구하라. 둘째로, 당신의 은사를 점검하라.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전도자로 부르셨다면, 그분은 당신이 그 사명을 감당하게끔 당신을 준비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은사를 확실하게 확인한다.

당신이 일단 소명을 확신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전심으로 추구해야 하며, 아무런 장애물도 방애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은 단지 하나님이 그분께서 그들이 하기를 바라시는 일을 해주시기만 기다리고 있다. 노아는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어주시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사람은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사탄은 반드시 당신이 소명을 이루지 못하도록 애쓸 것이지만, 당신은 그를 물리치고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록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더라도, 당신은 요한이 처음으로 요단 지역 주변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 모인 청중이 나중의 청중보다 훨씬 적었고, 그는 사람들의 조롱과 박해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자신의 사역에 그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그는 성공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요한의 첫 번째 영적 자질은 바로 요한은 자신의 소명을 알았고 그것을 추구하였다는 것이다.

요한의 두 번째 자질(John’s Second Quality)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2).

예수님은 요한의 단순한 메시지를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흡족히 여기셨는데, 그것은 그 메시지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늘 전파하셨던 메시지와 같았기 때문이다(마 4:17을 보라). 요한은 사람들이 회개 – 죄의 삶에서 의로운 삶으로 돌이키는 것 – 하라고 전파하였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개로 시작하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현대적인 복음 전도자들과는 달리, 요한은 종래로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의미 없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느낌의 욕구”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며, 그 기도를 하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단지 행위로써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만 인정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천국에 데려가고 싶을 만큼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인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시는 것처럼 그들을 보았다 —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반역하고, 죄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는 엄숙하게 그들에게 다가올 진노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그들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멸망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했다.

그러므로 모든 제자 삼는 사역자들이 본받아야 할 요한의 두 번째 영적 자질은 바로 요한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회개가 첫 번째 단계임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요한의 세 번째 자질(John’s Third Quality)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 3:4).

요한은 확실히 현대의 “성공적인 설교자”의 그림과는 맞지 않다. 사실, 그들은 절대로 요한과 같은 설교자를 그들의 교회에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공의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며, 땅의 보물을 추구하거나 겉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이심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소박한 삶을 살았고, 그의 생활방식은 누구도 실족하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동기가 돈이 아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전 세계 많은 현대적인 사역자들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들이 예수님을 잘못 전한 탓에 그리스도의 사역에 큰 피해를 주었다.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설교자가 될 수 있는 요한의 세 번째 자질은 바로 세례 요한은 검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요한의 네번째 자질(John’s Fourth Quality)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 3:7-8).

요한은 사역이 전개됨에 따라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였지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메시지를 타협하지 않았다. 세례가 인기를 얻기 시작함으로 인해, 요한은 심지어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동기를 의심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요단까지 찾아왔다(마 3:7). 그는 많은 사람이 단지 분위기에 편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들의 모든 속임수를 까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누구도 단지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받거나 회개를 입으로 한다고 하여 지옥으로부터 구해준다고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회개는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고 경고했다.

또한, 많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인해 구원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에 요한은 그런 생각의 오류를 폭로하였다.

요한의 네번째 칭찬할만한 자질은 바로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기에 진실을 말할 수 있었으며, 종래로 회개하지 않은, 거룩하지 않은 사람에게 천국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한의 다섯 번째 자질(John’s Fifth Quality)

요한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주지 않았으며 그들의 자기기만을 북돋아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들의 죄를 자복한”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었다(마 3:6). 그는 그에게 나아온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였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0, 12).

요한은 지옥에 관한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혼을 얻는 데 노력하기보다 사람들의 인기를 더 원하는 설교자들에 의해 종종 회피된다. 요한은 오직 거룩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한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주제를 선포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불에 던져질 것이다.

만일 요한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그는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어둠과 죽음의 선지자”, “지옥의 유황불 설교자”, “구도자 맞춤형”이 아닌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율법주의”이거나 “독선적”이라고 비난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신 설교자이었다. 그의 다섯 번째 자질은 바로 요한은 지옥에 대해 설교했으며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지를 명확하게 밝혔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누가는 요한의 메시지를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다(눅 3:18).

요한의 여섯 번째 자질(John’s Sixth Quality)

비록 요한은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그는 예수님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항상 그의 주님을 높였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 3:11).

요한의 자기 평가는 오늘날 “사역자들”에 의해 너무 자주 과시되는 교만과는 많은 대조를 이룬다. 그들의 다채로운 사역 잡지는 온통 그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며 예수님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그들은 마치 공작새처럼 교회 강단에서 으스대며, 회중들 앞에서 스스로를 높인다. 그들은 거만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 일부는 심지어 천사들과 하나님까지 명령한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할 존재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것은 비천한 노예의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그에게 나아오셨을 때 세례 베풀기를 거절하였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안 즉시로 모든 사람에게 그분을 가리키며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는 요한의 겸손한 좌우명이 되었다

요한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설교자가 되도록 한 여섯 번째 자질은 바로 요한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셨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를 높이려는 욕구가 없었다.

 

요한의 일곱 번째 자질(John’s Seventh Quality)

현대의 설교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종종 모호한 말로 설교한다. 이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하나님은 우리가 옳은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고 설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진짜와 가짜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 같은 설교에 “아멘”으로 응답할 것이다. 많은 설교자들은 또한, 세상의 수치스러운 죄는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면서 교회 내의 유사한 죄에 대한 언급은 피하려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포르노에 대해서는 호되게 꾸짖지만, 교구민들이 준성인 영화와 부도덕한 비디오를 관람하고 심지어 수집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두려워한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그러나 요한은 구체적으로 설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눅 3:10-14).

요한의 여섯 가지 특정된 지침 중 다섯 가지는 돈이나 물질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요한은 청지기직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황금률과 두 번째 큰 계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요한은 새로운 “신자”가 이렇게 “어려운”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몇 년 동안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청지기직은 처음부터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또 다른 요점을 이끌어낸다. 요한은 사소한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지 않고, 의복과 외적인 거룩함에 대한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는 “율법의 더 중한 바”(마 23:23)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고 우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알았다. 그 의미인즉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기본적인 필수품이 부족한 사람들과 나누고, 다른 사람들을 성실하게 대하고, 자기가 소유한 것에 만족하라는 뜻이다.

요한의 예수님께 사랑받는 일곱 번째 자질은 다음과 같다. 요한은 모호한 일반론식 설교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 심지어 청지기 직분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는 초점을 가장 중요한 것에만 두었다.

 

결론(In Conclusion)

물론, 목사나 교사의 사역은 요한의 주제보다 더 광범위한 특징이 있다. 요한은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설교하였다. 목사들과 교사들은 주로 이미 회개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과 신약의 서신서 기록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우리의 청중들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날 목사들은 죄인들을 마치도 성도처럼 여기고 설교한다. 단지 사람들이 교회 건물 안에 앉아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구원을 확신시켜주는 것이 우리의 일인 것은 아니다. 특히 그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 본질적인 구별이 없다면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수백만 명의 “세례 요한”같은 설교자가 교회강단에서 설교하기를 절박하게 수요하고 있다. 당신은 이 도전에 응할 것인가? 당신은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설교자 중 한 명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