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의 주제는 최근 몇 년 동안 교회에서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가르침의 내용은 성경에 모순된다. 그 결과, 전 세계 많은 목사들은 성경에서 종래로 언급한 적이 없는 영적 전쟁에 대해 가르치고 연습하고 있다. 물론 성경적인 영적 전쟁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 삼는 사역자가 마땅히 연습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 나는 사탄과 영적 전쟁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일부를 제기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쓴 “사탄과 영적 전쟁에 대한 현대 신화“(Modern Myths About Satan and Spiritual Warfare)란 책에 대한 요약이다. 그 책의 영어본은 우리의 웹 사이트 [1]
다니엘은 그가 바사 왕 고레스 제삼 년에 세 이레 동안 슬퍼하고 있을 때, 힛데겔 강가에서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천사의 방문목적은 우리가 이전 장에서 다니엘이 휴거와 마지막 때에 관해 들은 바를 살펴본 바와 같이, 그에게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이해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단 10:12-13, 강조 추가).
다니엘은 그의 기도가 이 천사와 만나기 3주 전에 이미 응답받았으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기까지 3주가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천사가 늦은 이유는 “바사 왕국의 군주”가 그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 천사는 돌파할 수 있었으나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도울 때까지 기다렸다.
그 천사는 다니엘을 떠날 때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단 10:20-21).
이 성경 구절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전능하지 않으며 그들은 악한 천사들과의 싸움에 실제로 관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일부 천사들이(예: 미가엘 등) 다른 천사들(예: 다니엘과 말한 천사)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해답할 수 없는 질문들(Questions for Which We Have No Answers)
우리는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니엘에게 미가엘을 보내어 메시지를 전달하심으로써 3주의 지연이 발생하지 않게 하지 않으셨을까?”라고 물을 수 있다. 성경은 왜 하나님께서 그 천사가 “바사 왕국의 군주”를 미가엘의 도움이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보내셨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해주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시기 위하여 어떤 천사를 보내시는지 알 수 없다! 왜 그분은 직접 찾아가시거나 혹은 다니엘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시거나 다니엘을 천국에 일시적으로 데리고 와서 말씀하시지 않으실까?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의 천사들 사이에 영적인 영역에서 지속적인 전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단지 몇 천 년 전, 하나님의 약한 천사 중 하나와 사탄의 천사 중 하나인 “바사 왕국의 군주” 사이에 3주간의 전투가 있었으며, 그 전투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그 외에 전체 성경에서 언급한 유일한 천사의 전투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하늘의 미래 전쟁이다. 그것뿐이다. 다른 천사의 전투가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결론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가정일 뿐이다.
신화에 근거한 신화(A Myth Based Upon a Myth)
다니엘과 바사 왕국의 군주 사이의 이야기가 우리의 영적 전쟁이 천사의 전투의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생각은 (소수의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천사들 사이에 정기적으로 전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한 발 물러서서 천사들 사이에 정기적인 전투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다니엘에 대한 이 이야기가 우리의 영적 전쟁이 천사의 전투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신화를 제창하는 사람들은 “만일 다니엘이 하루 후에 포기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익명의 천사가 오기 전까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암시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니엘의 지속적인 영적 전쟁으로 말미암아 익명의 천사가 저애를 물리칠 수 있었음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만일 다니엘이 영적 전쟁을 포기하였다면, 그 천사는 바사 왕국의 군주를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다니엘처럼 영적 전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악한 천사가 하나님의 천사를 이기게 된다는 것을 믿기를 원한다.
첫째로, 나는 다니엘이 “영적 전쟁을 한 것”이 아님을 지적해야겠다 –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을 뿐이다. 그가 어떤 악한 천사들에게 어떤 말을 하거나, 그들을 결박하거나, 그들과 “전쟁”했다는 언급은 아무데도 없다. 사실, 다니엘은 3주가 흘러, 익명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기까지 천사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이 3주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구하였다.
그러므로 질문을 한번 바꿔 보자. 만일 다니엘이 하루 또는 이틀 뒤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을 구하는 것을 멈췄다면, 익명의 천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에게 전달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익명의 천사가 “당신이 기도하기를 잘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 천사는 그가 올 수 있었던 공을 미가엘에게 돌렸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익명의 천사와 미가엘을 보내셨으며,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알려는 다니엘의 기도 응답으로 그들을 보내셨다.
사람들은 다니엘이 금식이거나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멈췄을 때 하나님이 “그래, 다니엘이 금식과 기도를 멈췄기 때문에, 그가 기도하기 시작한 첫날에 내가 너희 두 천사 중 하나를 그에게 메시지를 전하도록 보냈더라할지라도 이제는 그 일에 대해서 잊어라. 아무래도 다니엘서에 11장 또는 12장이 기록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다니엘은 분명 인내하며 기도하였으며(그것은 “영적 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심으로 응답하셨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인내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천사로부터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인물 중에는 3주보다 훨씬 적게 기도하거나, 또는 기도했다는 언급도 없는 사람들에게 천사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라.[2] 우리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성경적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 천사들 중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길에 악한 천사들과 싸웠다는 언급이 없는 천사들도 많다. 그 천사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악한 천사들과 싸울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랬다 하더라도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알 수 없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세 번째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신화에 대해 알아보자.
신화 3: “아담이 타락할 때, 사탄은 아담으로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차용계약을 얻었다“(Myth #3: “When Adam Fell, Satan Got Adam’s Lease to Control the World.”)
인류가 타락할 때 사탄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일부 사람들은 아담이 타락할 때, 사탄은 크게 진급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담이 최초의 “이 세상의 신”이였지만, 아담의 타락 때문에 사탄이 그 지위를 얻게 되고, 땅에서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조차 아담이 사탄에게 자신의 지위를 내어주는 것을 막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아담이 자신의 지위를 사탄에게 줄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도 지금은 사탄에게 속한 아담과의 약속을 존중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탄은 지금 “아담의 차용계약”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도 “아담의 차용계약이 끝날 때”까지 사탄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이 이론은 사실일까? 사탄은 인류가 타락할 때 “아담의 차용계약”을 얻었는가?
절대 아니다. 인류가 타락할 때, 사탄은 하나님의 저주와 그의 완전한 죽음에 대한 약속 외에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실, 성경은 아담이 최초의 “이 세상의 신”이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둘째로, 성경은 아담이 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이 있다고 말씀한 적이 없다. 셋째로, 성경은 아담이 언젠가는 만료될 차용계약을 가졌다고 말씀한 적이 없다. 이런 생각들은 모두 비성경적이다.
아담은 원래 어떤 권한을 소유했을까?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강조 추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이 이 땅의 “신”이라거나, 그가 모든 것, 예하면, 날씨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분은 단지 최초의 인간으로서의 아담과 하와에게 물고기, 새, 그리고 동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으며 그들이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할 것을 명령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심판을 선고하실 때에도, 아담이 “이 땅의 신”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고 하신 적이 없다. 또한, 그분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이 물고기, 새와 가축에 대한 지배를 잃었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사실, 나는 인류가 아직도 물고기와 새와 “땅의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여전히 이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있다. 아담은 타락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최초의 권한을 잃지 않았다.
사탄이 “이 세상의 신”이 아닌가?(Isn’t Satan “God of This World”?)
그러나 사탄에 대해 바울은 “이 세상의 신”으로, 예수님은 “이 세상의 통치자”로 언급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하지만 둘 중 아무도 아담이 원래 “이 세상의 신”이였다거나, 아담이 타락할 때 사탄이 그 지위를 얻었다고 암시한 적은 없다.
또한, “이 세상의 신”이란 사탄의 직함은 사탄이 땅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거나 하나님이 그를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강조 추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면, 사탄은 그분이 허락하실 때밖에 역사할 수 없다.
누가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는가? 그분은 그것을 예수님께 주시기 위해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임이 틀림없다. 바로 그 때문에 예수님은 그분의 아버지를 “천지의 주재”(마 11:25; 눅 10:21, 강조 추가)시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 땅을 만드실 때부터 땅에 대한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처음에 인간에게 약간의 권한을 주셨으며, 인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결코 잃은 적이 없다.
성경이 사탄이 이 세상의 신 또는 통치자라고 할 때에는 단순히 이 세상의 사람들이(거듭나지 않은 사람) 사탄을 따르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들은 알든 모르든 사탄을 섬기고 있으며 사탄은 그들의 신이다.
사탄이 천하 만국을 주겠다는 제안?(Satan’s Real-Estate Offer?)
사탄이 이 세상을 가졌다는 많은 이론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한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먼저 누가복음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눅 4:5-8을 보라).
이 사건은 사탄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거나, 아담이 그 권세를 그에게 넘겨주었다거나 또는 하나님이 마귀를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아니, 거기에는 여러 가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이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하신 사탄의 주장에 신학의 기반을 두는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사탄이 때로는 진실을 말할 때도 있지만, 이 경우에 우리는 각별히 경각성을 높여야 하는데 그것은 사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분명히 모순되기 때문이다.
다니엘서 4장에는 느부갓네살 왕의 굴욕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자신의 지위와 업적에 자부심으로 가득 찬 느부갓네살은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 때까지“(단 4:25, 강조 추가) 동물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선지자 다니엘에게서 들었다. 이 이야기와 관련하여 이 같은 선언은 네 번 나오는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단 4:17, 25, 32; 5:21).
다니엘이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라고 말한 점을 주목하라. 그것은 하나님이 이 땅을 통치하신다는 말이 아닌가?
또한, 다니엘의 주장이 사탄이 예수님께 한 말과 직접 모순됨을 주목하라. 다니엘은 하나님이 “자기의 뜻대로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라고 말했지만, 사탄은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라고 말했다.
그럼 당신은 누구를 믿겠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다니엘을 믿겠다.
그러나 사탄이 진실을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 만일 우리가 다른 각도에서 그의 말을 살펴보면 말이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사탄이 “이 세상의 신”이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반역하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을 포함한 어둠의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처하였다”(요일 5:19)고 말씀한다. 사탄이 천하 만국의 모든 권세를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말할 때, 그는 단지 자기의 나라인 어둠의 나라, 즉 부속국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략 지정학의 나라에 해당하는 나라에 대해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사탄이 여러 가지 계급의 악의 영들을 통하여 자기의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엡 6:12을 보라), 그가 지배자이기 때문에 각 계급의 영들의 지위를 높여주거나 떨어뜨릴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사탄은 합법적으로 예수님께 자기의 아래자리를 줌으로써 그를 도와 어둠의 나라를 통치하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다만 사탄에게 엎드리어 그를 경배하기만 하면 된다. 다행히, 예수님은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셨다.
누가 사탄에게 그의 권세를 주었는가?(Who Gave Satan His Authority?)
그러나 이 모든 권세를 “넘겨받았다”는 사탄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사탄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가 진실을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사탄은 아담이 그에게 넘겨 주었다고 말하지 않았음을 주목하라.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아담은 그 권세를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탄에게 넘겨 줄 수도 없었다. 아담은 물고기, 새, 짐승을 다스렸지 이 세상을 다스린 것이 아니다. (실제로, 아담이 타락할 때에 그가 다스릴 수 있는 사람들의 나라가 없었다.) 또한, 사탄이 예수님께 모든 악의 영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둠의 나라를 다스리라는 제안을 하였더라도, 아담은 절대 이런 권한을 사탄에게 넘겨줄 능력이 없다. 사탄은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타락한 천사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사탄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기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지 그에게 복종하여 그들을 통치하는 권세를 그에게 넘겨 주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 권세를 그에게 넘겨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비추어 볼 때, 매우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나는 너와 너의 악한 영들이 나에게 복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통치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라고 말씀하셨을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이것은 사탄의 주장에 대한 가장 가능성 있는 해석이다. 만일 하나님이 진실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면”(단 4:25), 사탄이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권세도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것임에 틀림없다.
사탄은 오직 “반역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 어둠의 나라만 통치한다. 그는 아담의 타락 이전에 천국에서 쫓겨난 후로부터 그 나라를 통치하였다. 아담의 타락하기 전까지는 어둠의 나라는 단지 천사들의 반역만 있었다. 하지만 아담이 죄를 지을 때부터, 그는 그 반역의 나라에 들어갔으며, 그때부터 사탄의 나라는 반역한 천사들뿐 아니라 반역한 인간들도 포함하였다.
사탄은 아담이 창조되기 전부터 그의 어둠의 나라를 통치하였기에, 우리는 아담이 타락할 때 사탄이 아담이 소유한 것을 넘겨받았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는 이미 존재했던, 사탄이 통치하는 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에 놀라셨을까?(Was God Surprised by the Fall?)
사탄이 권세를 가졌다는 이론의 또 다른 결함은 하나님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하나님이 인류의 타락을 예상치 못하셨고 그 결과 슬픈 처지에 놓이게 된 것처럼 생각한다. 하나님은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것이며 그 결과 인간이 타락할 것이라는 점을 모르셨을까? 하나님이 전지하시다면, 그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알고 계셨음이 틀림없다. 바로 그 이유때문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창세 전부터 계획하셨다고 말씀한 것이다(마 25:34; 행 2:2-23; 4:27-28; 고전 2:7-8; 엡 3:8-11; 딤후 1:8-10; 계 13:8을 보라).
하나님은 마귀가 타락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마귀를 창조하셨고,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지으셨다. 사탄은 절대 하나님을 속이고 자기에게 없고 하나님께만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탄이 “이 세상의 신”이 되기를 원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그렇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된다면 말이다. 만일 하나님이 사탄이 역사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요한계시록 20:1-2의 말씀처럼 그분은 그를 쉽게 저지시키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사탄의 지배 속에 살기를 원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신다(행 26:18; 골 1:13; 딤전 2:3-4; 벧후 3:9). 하지만 하나님은 사탄이 어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지배하도록 허락하신다(요 3:19을 보라) – 그들은 하나님께 계속하여 반항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이 사탄의 어둠의 나라를 벗어나게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할 수 있다(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사로잡은 악의 영들을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들이 어둠 속에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실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성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다른 성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0:14). 그분은 그들이 그 성에 거하면서 영적인 요새를 뒤엎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접할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악의 영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분께 돌아서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속박하도록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권세가 사탄보다 크다는 것에 대한 추가 증명(Further Proof of God’s Supreme Authority Over Satan)
인간이 타락할 때 하나님이 사탄에 대한 지배를 잃지 않으셨음을 증명하는 많은 다른 성경 말씀들이 있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은 과거에도 그러셨지만, 앞으로도 항상 사탄을 지배하신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마귀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밖에 할 수 없다. 먼저 이 사실을 증명하는 몇 가지 구약 성경의 말씀들을 살펴보자.
욥기의 처음 두 장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욥을 고발하는 것을 읽게 된다. 그 당시, 욥은 이 땅의 누구보다 더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사탄은 그를 표적으로 삼았다. 하나님은 사탄이 욥을 주의하여 보았음을 아셨으며, 욥이 그분을 섬기는 것은 그가 누리고 있는 축복들 때문이라고 사탄이 고소하는 것을 들으셨다(욥 1:9-12을 보라).
사탄은 하나님이 욥의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셨기에 그분께서 욥의 축복들을 빼앗아 갈 것을 요청했다. 결국, 하나님은 사탄이 제한된 정도 내에 욥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셨다. 처음에, 사탄은 욥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은 사탄이 욥의 몸을 괴롭힐 수 있게 허락하셨다. 하지만 죽이지는 못하게 하셨다(욥 2:5-6).
이 성경 말씀은 사탄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전까지는 욥의 재산을 다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전까지는 욥의 건강을 해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욥을 죽일 수 없었다.[3]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도 사탄을 지배하셨다.
“하나님이 부리시는” 사울의 악령(Saul’s Evil Spirit “From God”)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진노의 도구로써 사탄의 악의 영을 사용하신 몇 가지 예가 있다. 사무엘상 16:14에는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은 분순종한 사울 왕에 대한 하나님의 훈계 때문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천국에 거하는 악령을 보내셨다는 뜻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탄의 악한 영 중의 하나가 사울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일까? 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다른 말씀들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두 번째 가능성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악령이 “하나님이 부리시는” 것이라고 한 이유는 사울에 대한 악령의 괴롭힘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징계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악령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사기 9:23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셔서” 그들이 악행에 대한 그분의 심판을 받게 했음을 읽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악한 영은 하나님의 천국에서 보내진 것이 아니라 사탄의 영역에서 보내진 것이며 특정 사람들에게 악한 계획을 역사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받은 것이다. 악한 영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누구에도 그들의 악한 계획을 실시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전능하시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아담이 타락할 때, 사탄이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난 권세를 얻지 못했다고 한 번 더 안전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님의 권능이 사탄을 능가한다는 신약 성경의 예(New Testament Examples of God’s Power Over Satan)
신약 성경은 사탄이 권세를 얻었다는 이론을 반박하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9:1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는 권위”를 주셨다. 또한, 누가복음 10:19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강조 추가)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탄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다면, 그분 자신이 먼저 그 권능을 가지셔야 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있다.
나중에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 22:31)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 문구는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베드로를 괴롭힐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시 한 번, 사탄은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다.[4]
사탄의 천 년 결박 기간(Satan’s Thousand-Year Prison Term)
우리는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사탄이 한 천사에 의해 결박당하는 것을 읽게 되는데, 거기에는 아담의 차용계약이 만기가 되었다는 언급이 없다. 사탄이 투옥된 이유에 대해서는 그저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계 20:3)이라고 하였다.
흥미롭게도, 사탄은 천 년 동안 투옥된 후 놓이게 되며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한다”(계 20:8). 미혹당한 백성들은 군대를 모아 예수님이 통치하시게 될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된다. 그들이 성을 둘렀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린다”(계 20:9).
아담의 차용계약이 천 년 후의 마지막 짧은 기간까지 포함하기에 하나님은 사탄을 놓아 주실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 부분의 성경 말씀에서 한 번 더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마귀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계시며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미래의 천 년 통치 동안, 사탄은 역사하지 못할 것이며 아무도 속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 때에, 그리스도의 통치에 겉으로는 순종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분의 전복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장으로 다스리시는”(계 19:15) 이를 뒤엎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반란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이 놓일 때, 그는 마음속으로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으며 그들은 어리석게도 불가능한 일을 시도한다. 사탄은 잠재적인 반역자들을 속이도록 허락받았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드러나게 되며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에서 살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로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시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나중에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목적을 알아보겠지만, 지금 하나님은 아무도 미혹당한 상태에 남아있기를 원하시지 않는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싶어 하신다. 사탄은 진리를 알고 믿는 사람들을 미혹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가 자신의 굳은 마음 때문에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적 그리스도의 때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8-12, 강조 추가).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주목하라. 그러나 또한 미혹당한 사람들은 “진리를 믿지 않았음”을 주목하라. 그들은 기회가 있었지만 여전히 복음을 거부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적그리스도에게 거짓 이적과 표적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셔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이 미혹당하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이 모두 심판을 받는 것이다.” 같은 이유 때문에,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사탄이 사람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탄이 이 땅에서 역사하도록 허락하셔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분은 그가 타락할 때 우주의 다른 곳으로 쉽게 내쫓으실 수 있다. 베드로후서 2:4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뜻이라면 사탄과 그의 천사들에게도 똑같이 행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땅에서 오랫동안 역사하도록 허락하신 좋은 이유가 있다.
고통에 대한 귀신의 두려움(The Demons’ Fear of Torment)
세번 째 신화를 마무리 지으면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성경의 예는 가다라의 귀신 들린 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마 8:28-29, 강조 추가).
이 이야기는 종종 사탄이 권세를 가졌다는 이론의 지지자들에 의해 사용된다. 그들은 “그 귀신들은 예수님의 공의를 호소했다. 그들은 아담의 차용계약이 만료될 때, 곧 그들과 사탄이 불못에 던져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하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그들을 괴롭힐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가 진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그들을 괴롭힐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계심을 알고 있었기에 그분께 자비를 구했던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을 보내어 훨씬 더 빨리 괴로움을 당하게 할까봐 매우 두려워했다. 누가는 그들이 예수님께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간구했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눅 8:31). 만일 예수님이 마귀가 가지고 있는 합법적인 권리 때문에 그러한 권한이 없으셨다면, 그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라고 간구하고(막 5:10),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구하고(막 5:12),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그리고 “때”가 이르기 전까지 괴롭히지 말라고 그리스도께 간구하는 모습으로 보아, 그 귀신들은 그들이 완전히 예수님의 자비 아래에 놓여 있음을 알고 있다.
신화 4: ” ‘이 세상의 신’으로서 사탄은 인간의 정부, 자연재해 및 기후와 같은 이 땅의 모든 것을 통치한다.”(Myth #4: “Satan, as ‘the god of this world’ has control over everything on the earth, including human governments, natural disasters, and the weather.”)
성경에서 사탄을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요 12:31; 14:30; 16:11)이라고 하셨다. 이런 직함에 근거하여, 많은 사람들은 사탄이 이 땅을 완전히 통치한다고 가정한다. 비록 우리가 이미 충분한 성경 말씀들을 통하여 이 신화의 오류를 제시했지만, 우리가 사탄의 능력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깊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이해가 단지 이 세상의 신, 또는 임금이라는 네 개의 성경 구절에만 의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더 많은 성경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셨을뿐 아니라 그분의 하늘의 아버지를 “천지의 주재”(마 11:25; 눅 10:21, 강조 추가)시라고 하셨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사탄을 “이 세상의 신”이라 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천지의 주재”(행 17:24, 강조 추가)시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이나 바울 모두 우리가 사탄이 이 땅을 완전히 통치한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탄의 권한이 제한적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대조적인 성경 말씀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세상이란 단어와 땅이란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이 두 단어를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일단 우리가 그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한다면, 이 땅에 대한 하나님과 사탄의 권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이 땅의 주재라고 하셨다. 땅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ge이다.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행성을 가리키며, 그것으로부터 영어 단어 geography(지리)가 파생되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은 사탄이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세상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kosmos이며, 그것은 주로 질서 또는 배열을 의미한다. 그것은 실제 행성 자체보다 사람을 가리킨다. 그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사탄이 “이 세상 조직의 신”이라고 말한다.
현재, 하나님은 이 세상을 완전히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주인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셨으며 많은 사람들은 사탄에게 자신의 충성을 바치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자유 의지도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다.
바울이 이 세상의 신이란 표현을 쓸 때에는 다른 헬라어aion를 사용하였다. Aion는 종종 특정한 시대로 번역되었다. 사탄은 현 시대의 신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적인 행성이다. 세상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며,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사탄을 섬기고 있으며, 타락하고 죄로 가득한 조직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요 17:11,14)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는 어둠의 나라의 시민들 사이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나라인 빛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해답을 찾았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이 땅 전체를 통치하신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어둠의 나라의 시민들을 지배하는 “세상의 조직”만 통치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도 요한은 “온 세상은(온 땅이 아닌)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요일 5:19)이라고 썼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 또는 세상의 조직, 또는 세상의 사람들에 대한 권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니엘이 쓴 것처럼, 그분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단 4:25). 그분은 여전히 원하시는 대로 누구든지 높이시거나 낮추실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로서, 그분은 사탄이 그분께 반역하는 자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주권적으로 허락하셨다.
사탄의 제안(Satan’s Offer Considered)
땅과 세상 사이의 구별은 우리가 광야에서 예수님이 받은 유혹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사탄은 예수님께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여주었다. 사탄은 예수님께 우리가 대통령이나 총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어떤 세속적인 인간 정부의 정치적인 지위를 제안할 수 없었다. 사탄은 이 땅의 인간 통치자들을 높이거나 낮출 수 없다. 하나님만이 그러실 수 있다.
오히려, 사탄은 예수님께 어둠의 나라의 모든 하위 나라들을 보여주었음이 틀림없다. 그는 예수님께 각각 자기의 영역에서 어둠의 나라뿐 아니라 그들의 신하인 반역한 인간들을 다스리는 악한 영들의 계급 구조를 보여주었다. 사탄은 예수님께 자기의 영역을 다스릴 것을 제안하였다 –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사탄의 반역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어둠의 나라에서 부사령관이 될 것이다.
이 땅의 인간 정부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God’s Control Over Earthly, Human Governments)
먼저 이 땅의 인간 정부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확증하는 성경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사탄의 권세의 한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확립해가자. 사탄이 인간 정부에 대해 일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그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일부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는 종종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조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인간 정부의 주권자이시며, 사탄은 단지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정도 내에서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느부갓네살 왕에게 한 다니엘의 진술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것의 계시가 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그것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위대한 왕 느부갓네살은 그의 능력과 성취 때문에 점점 교만하여 높아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낮추시겠다고 선언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단 4:17)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의 정치적 상승을 가져오셨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에 대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라고 선언하였다(롬 13:1).
하나님은 전체 우주 최초의 그리고 가장 높은 권세이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를 그분의 또는 허락받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 위임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한 통치자들은 어떠한가? 바울은 심지어 그들까지도 하나님에 의해 세움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같은 서신의 앞부분에서 바울은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롬 9:17)라고 썼다. 하나님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마음이 강퍅한 바로를 세우셨다. 하나님은 구원의 기적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그분의 능력을 보여주실 수 있었는데 이 기회는 그분이 세우신 마음이 강퍅한 사람이 제공하였다.
이 같은 사실은 예수님과 빌라도 사이의 대화에서도 분명하지 않은가? 빌라도가 예수님께 “내가 네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 19:11 강조 추가)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은 빌라도의 비겁한 성격을 아시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그분의 예정된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다.
구약 성경의 역사를 읽어보면, 하나님은 종종 악한 인간 통치자를 그분의 진노의 대리인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의 많은 민족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통치자들을 세우시거나 낮추신 사례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신약 성경에서, 헤롯은 그의 백성들이 그의 연설을 듣고 그의 앞에서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행 12:22)라고 크게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그 결과는 그는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행 12:23).
헤롯은 명백히 사탄의 나라의 시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음을 명심하라.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시면, 이 땅의 지도자를 누구든지 낮추실 수 있다.[5]
하나님의 증언(God’s Personal Testimony)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이 땅의, 인간의 국가에 대한 그분의 주권에 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읽어보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6-10).
당신은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할 때, 합법적으로 예수님께 이 땅의, 인간의, 정치적 나라를 제공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겠는가? 만일 그가 진실을 말했다면(그는 때로는 그렇게 한다), 그가 예수님께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둠의 나라를 통치하는 것일 것이다.
사탄은 인간의 정부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있다. 그러나 단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인간의 정부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적 주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원하시면 언제든지 사탄의 어떤 계획이라도 좌절시키실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계 1:5)고 썼다.
사탄이 자연재해와 이상 기후를 일으킬까? (Does Satan Cause Natural Disasters and Adverse Weather?)
사탄이 “이 세상의 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후를 조종하며 가뭄, 홍수, 태풍, 지진과 같은 모든 자연재해를 일으킨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치는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사탄에 대한 전체 이론을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다”(요 10:10)라는 한 성경 말씀에만 근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인용하여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은 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얼마나 자주 듣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더 많이 살펴볼수록, 하나님 자신도 가끔 죽이고 멸망시키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예제들 가운데 아래 세 구절을 살펴보자.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약 4:12, 강조 추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강조 추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강조 추가).
우리가 죽이거나 멸망시키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사탄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죽이고 멸망시키셨다는 많은 예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 온 도둑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실제로 마귀를 가리키신 것인지를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문맥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그 말씀 전에 예수님은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 10:8)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라는 요한복음 10:1-15의 전체 말씀을 일어보면, 그분께서 도둑이라고 언급하신 것은 거짓 교사와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에 대한 다양한 관점(Various Views of Adverse Weather and Natural Disasters)
폭풍이나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이런 신학적인 질문이 들것이다. “누가 이것을 일으킬까?”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하나님 아니면 사탄이 그것을 일으킨다.
일부 사람들은 “아니, 하나님은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난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시고 계십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에 심판으로 폭풍이나 지진을 일으키셨다면,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닌, 반역적인 인간을 비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책임을 갖고 계시는데, 그것은 자연재해가 그분의 명령 없이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만일 하나님께서 사탄이 폭풍과 지진을 일으켜 죄인에 대한 그분의 심판을 가져오도록 허락하셨다면, 우리는 사탄이 그것을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여전히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사탄이 파괴를 일으키도록 허락하셨으며, 또한 이러한 파괴는 그분의 창조물이 지은 죄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폭풍과 지진에 대해 하나님과 사탄,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으며, 그것은 단순히 “죄로 타락한 세상의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모호하게나마 그들도 역시 자연재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이런 해석은 하나님의 책임을 없애지는 못한다. 만일 폭풍이 단순히 “죄로 타락한 세상의 자연적인 현상”이라면, 누가 그것이 일어날 것을 결정하는가? 폭풍은 분명히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즉 폭풍은 대기 속에 특정 양의 거짓말이 전파될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진은 특정 인수의 사람들이 간음할 때마다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폭풍과 죄 사이에 연관이 있다면, 하나님이 관여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폭풍은 죄에 대한 그분의 심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작위로 발생한다 할지라도, 무작위로 발생하도록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분은 관여하셨다.
죄와 자연재해 사이에 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세계를 설계하실 때, 하나님의 실수로 인한 오류 때문에 지각이 때때로 흔들리고 기후가 이따금 난폭해지므로 하나님은 지진과 폭풍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피하실 수 없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그분의 실수 때문에 사람들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There is No “Mother Nature”)
그래서 우리는 자연재해의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해답밖에 없다.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면 사탄의 책임이다. 정확한 해답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구체적인 성경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 두 가지 가능한 해답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해보자.
만일 사탄이 자연재해를 일으켰다면, 하나님은 그를 막으실 수 있거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사탄이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것을 막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으시지 않았다면, 그분은 여전히 일부 책임을 지셔야 한다. 그분의 허락 없이는 재앙이 발생할 수 없다.
다른 측면에서, 하나님이 사탄을 제지시키시고 싶었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다고 잠시 가정해보자. 그것은 정말 가능성이 있는 일인가?
만일 하나님이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사탄을 제지하실 수 없다면, 사탄이 하나님보다 더 강력하거나 총명하다. 이것은 사실상 “사탄은 아담이 타락할 때 이 세상을 통치하는 권세를 얻었다”는 이론이 말하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탄이 아담의 차용계약을 손에 넣었기에 이 땅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하나님은 사탄을 제지하시고 싶지만, 사탄이 갖고 있는 아담의 차용계약을 존중해야 하므로 제지하실 수 없다. 즉,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하시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었지만, 사탄은 하나님보다 총명하여 하나님이 그가 갖기를 바라시지 않았던 권세를 얻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탄이 하나님보다 더 총명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탄이 권세를 얻었다는” 이론이 사실이라면, 왜 사탄은 지금보다 더 많은 지진과 폭풍을 일으키지 않는지, 그리고 왜 더 많은 규모의 그리스도인들을 목표로 하지 않는지 우리는 알고 싶을 것이다(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을 목표로 삼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곧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역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된다.)
우리가 범위를 좁혀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두 가지 해답은 (1) 하나님이 지진과 폭풍을 일으키시거나 (2)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일으키는 것이 된다.
당신은 어느 해답이 정확한지에 관계없이, 궁극적인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은 그 폭풍을 보내시지 않았다.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일으킨 것이다”라고 말할 때, 그들은 희망대로 하나님을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는 하지 못한다.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사탄이 폭풍을 일으키는 것을 제지하셨다면, 그분은 책임을 지시게 된다. 반역한 인간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비난받을 수 있다(하나님께서 폭풍을 일으키셨거나 심판의 도구로서 허락하셨다면), 하지만 하나님이 참여하시지 않았다거나 책임이 없으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성경의 증언(Scripture’s Testimony)
자연재해에 대해 성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이나 사탄이 그것을 일으킨다고 말씀하는가? 먼저 지진에 대한 성경의 말씀부터 살펴보자.
성경에 따르면, 지진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예레미야서에서 우리는 “그[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렘 10:10, 강조 추가)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이사야도 아래와 같이 경고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사 29:6, 강조 추가).
당신은 모세의 시대에 땅이 입을 열어 고라와 그의 반역자들을 삼켜버린 일을(민 16:23-34을 보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 행위였다.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심판하신 다른 예는 겔 38:19; 시 18:7; 77:18; 학 2:6; 눅 21:11; 계 6:12; 8:5; 11:13; 16:18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일부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 행위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발생 하였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와(마 27:51, 54) 부활하셨을 때에(마 28:2) 지진이 일어났다. 사탄이 일으킨 것일까?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송할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행 16:26, 강조 추가). 사탄이 그 지진을 일으켰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간수도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한 후 구원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사도행전에서 유일하게 언급한 하나님이 일으키신 지진이 아니다(행 4:31을 보라).
나는 최근 일부 좋은 뜻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특정 지역의 지진예보를 듣고 그 곳에 가서 마귀를 대적하여 “영적 전쟁”을 벌렸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당신은 그들이 범한 오류가 보이는가? 그들은 하나님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서 그곳까지 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 지진을 막기 위해 마귀와 전투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폭풍은 어떠한가?(How About Hurricanes?)
폭풍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지만, 우리는 광풍에 대한 예는 확실히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물결을 일으키는도다(시 107:23-25, 강조 추가).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욘 1:4, 강조 추가).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역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계 7:1).
분명히,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키시고 멈추실 수 있다.[6]
성경 전체에서, 사탄이 바람을 일으켰다는 말씀은 한 곳밖에 없다. 욥이 시험을 받고 있을 때, 한 사람이 그에게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욥 1:19)라고 보고하였다.
우리는 욥기 1장을 읽는 것을 통하여 욥의 불행의 원인이 사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욥과 그의 자녀들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바람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릴리의 광풍(The Gale on Galilee)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로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그들을 습격한 “맹렬한 광풍”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실은 배에 광풍이 일게 하시지 않을 것이므로 그 바람은 사탄이 일으킨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해칠 수 있는 바람을 일으키셨겠는가?
이것은 좋은 쟁론이다. 하지만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자. 하나님께서 그 폭풍을 보내시지 않고 사탄이 보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사탄이 바람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하셨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질문은 여전히 답변 되어야만 한다. 왜 하나님은 사탄이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해칠 수 있는 폭풍을 보내는 것을 허락하셨을까?
해답은 무엇일까? 아마도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에 관해 가르치시고 계셨을 것이다. 어쩌면 그분은 그들을 시험하시고 계셨을 수도 있다. 혹은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신”(히 4:15) 예수님을 시험하시고 계셨을 수도 있다. 완벽하게 시험받으시기 위해, 예수님은 두려움의 시험도 받으셔야만 했을 수 있다. 혹은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싶었을 수 있다. 혹은 이상의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싶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홍해로 이끄실 때, 그들이 바로의 군대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을 잘 아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을 몰살당하게 될 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자기 자신을 대적하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의 한 예가 아닌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학살당하도록 내버려 두실 의도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이 갈릴리 바다에 광풍을 일으키시거나 사탄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셔서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물에 빠지게 하시려는 의도가 없으셨다.
어쨌든, 성경에는 사탄이 갈릴리 바다에 광풍을 보냈는 말씀도 없고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씀도 없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셨기 때문에 바람을 보낸 자가 사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빈틈없는 주장은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바람을 꾸짖으셨다. 하나님 아버지도 똑같은 일을 하셨을 수 있다. 즉, 그분은 한마디 말씀으로 바람을 일으키실 수도 있고 꾸짖으심으로 그것을 잠잠하게 하실 수도 있다. 예수님이 광풍을 꾸짖으셨다는 것은 사탄이 그것을 일으켰다는 것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전체 신학을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한 구절의 말씀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바람을 제어하시며, 대부분의 경우, 그분께서 바람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많은 성경 말씀들을 언급하였다. 내 요점은 사탄이 비록 “이 세상의 신”이지만, 독립적으로 바람을 제어하거나,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또는 어디에서든지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풍이 발생할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통제를 떠난, 그분께서 멈추고 싶으시지만 그러실 수 없는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이 광풍을 꾸짖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폭풍을 멈추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폭풍을 보내셨거나(또는 허락하셨다면), 그분에게는 꼭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분께서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경고하시고 심판하시기 위해 광범위한 재난적인 황폐함을 가져오는 폭풍을 보내시거나 허락하신다고 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울 것이다.
“그러나 폭풍이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을 해치기도 한다“(“But Hurricanes Sometimes Harm Christians”)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재해의 피해를 입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폭풍이 덮칠 때, 그것은 비그리스도인들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제외되지 않았는가? 자연재해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 줄 때, 우리는 어떻게 그분께서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의 발생을 주관하신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사탄이 자연재해를 일으킨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하면 쉽게 대답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만일 사탄이 모든 자연재해를 일으켰다면, 왜 하나님은 사탄이 그분의 자녀들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을 일으키도록 허락하셨을까?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노하심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다”(살전 5:9)고 명백하게 말씀한다. 동시에, 성경은 예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요 3:36)고 말씀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내려질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대답은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
출애굽할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장소에서 함께 살았으므로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로 내린 악성 종기의 재앙은 그들을 해치지 않았다(출 8:22-23; 9:3-7; 24-26; 12:23을 보라).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애굽인”들과 함께 살고, 나란히 일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연재해의 방식으로 심판하시려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가?
탈출은 확실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는 핵심 단어이다. 비록 노아가 하나님이 땅에 홍수를 내리실 때, 하나님의 완전한 진노를 탈출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는 방주를 구축하기 위해 수고해야 했고 냄새나는 동물 무리와 함께 배에서 1년 동안 보내야만 했다. (덧붙여, 구약과 신약 성경은 노아의 홍수는 사탄이 아닌 하나님이 내리신 것이라고 말씀한다; 창 6:17; 벧후 2:5을 보라).
하나님의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졌을 때에, 롯은 그의 아내와 함께 탈출하였지만, 유황불의 파괴로 자신의 모든 소유를 잃어야만 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신자들이 성이 적군으로 포위당했을 때, 도망하라고 경고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징벌의 날”(눅 21:22-23)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원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것을 허용하심으로써 그분의 진노를 분명하게 나타내셨다. 그리스도의 경고를 마음에 새긴 그리스도인들은 도망하여 목숨을 건졌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에 두고 온 모든 것을 잃었다.
위의 세 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악인에게 떨어질 때, 하나님의 백성들도 어느 정도 고통당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재해가 종종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 준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자연재해에 대한 책임이 없으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What Then Shall We Do?)
우리는 하나님이 저주하신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를 줄곧 경험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많은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 1:18)고 썼다. 우리는 악하고 하나님이 저주하신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를 향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이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썼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7-8).
예레미야는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가뭄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더위와 가뭄이 올 때,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친, 물 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다. 온 세상이 쇠약해질지라도 그에게는 다른 공급원이 있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었을 때, 까마귀에 의해 공급받은 엘리사의 이야기도 한 예이다(왕상 17:1-6을 보라). 다윗은 의인은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다”(시 37:19)라고 썼다.
그러나 기근은 마귀가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성경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항상 책임을 지시며, 기근은 종종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진노의 결과로 내려졌다. 예를 들면,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렘 11:22, 강조 추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렘 29:17).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겔 14:13, 강조 추가).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학 1:9-11, 강조 추가).
위의 네 번째 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죄 때문에 한재를 입었음을 읽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신다.[7]
만일 하나님이 악한 백성에게 기근을 보내셨고, 우리가 그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바울은 기근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강조 추가).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결코 기근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주목하라. 그는 율법 학자로서, 기근은 하나님이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내리시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도 기근을 만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순종과 지혜(Obedience and Wisdom)
둘째로,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사용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피면 해야 한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야만 했고, 롯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했으며,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도시에서 도망해야만 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휘말리는 것을 피면 하기 위해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했다.
내가 만일 폭풍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면, 폭풍에 날아갈 수 없는 든든한 집 또는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싼 집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도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며 예수님이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신다”(요 16:13)고 약속하신 분 안에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
사도행전 11장에서 우리는 선지자 아가보가 유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재난이 될 수 있었던 기근에 대해 경고한 것을 읽을 수 있다. 결국,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믿음에 의해 부조를 받게 되었다(행 11:28-30을 보라).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변하셨거나 하나님의 사랑이 무효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 지체들은 성령님의 이런 은사와 나타내심에 대해 열려있지 않다. 그들은 “성령을 소멸하여”(살전 5:19) 하나님의 일부 최선의 것을 놏치게 된다.
순복음 기업인의 설립자이자 전 사장인 데모스 사카리안은 그의 자서전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문맹인 남자아이를 통해 1800년대 후반의 아르메니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셨는지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그는 임박한 대학살에 대해 경고하였는데, 그 결과로, 이러한 초자연적인 명시를 믿은 수천 명의 오순절파 그리스도인들은 그 나라에서 도망하였으며 그 가운데는 사카리안의 조부모도 있었다. 그후 머지않아, 아르메니아를 침공한 터키군은 수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하였으며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되었다.
우리가 성령님께 열려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지 않지만, 그분의 진노를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엘리사는 어느 한 번 한 여인에게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왕하 8:1)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그 여자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녀가 받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흥미로운 경고를 읽게 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바벨론]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계 18:4-5, 8, 강조 추가).
요약하면, 하나님은 기후, 자연재해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그분께서 자연을 주재하심을 반복적으로 증명하셨다. 그분은 노아의 시대에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리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원수에게 우박과 다른 자연재해를 내리시고, 요나의 배에 바람을 일으키시고, 갈리리 바다에서 바람을 꾸짖으셨다. 그분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지의 주재시다”(마 11:25).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하는 성경 말씀을 참고하려면, 수 10:11; 욥 38:22-38; 렘 5:24; 10:13; 31:35; 시 78:45-49; 105:16; 107:33-37; 135:6-7; 147:7-8, 15-18; 마 5:45; 행 14:17을 보라.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A Few Questions Answered)
만일 하나님이 기근, 홍수, 지진을 통해 사람을 심판하신다면, 하나님을 대표하는 우리가 하나님이 징벌하시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분이 심판하시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연재해를 통한 그분의 심판은 실제로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자연재해가 가져오는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그분은 거룩하시고 심판을 내리시기에 죄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것에 대해 경고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주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일시적인 고통을 허락하신다 – 그것은 그들이 불못에 던져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는 한,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게 넘치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며 그들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신다. 우리는 우리의 동정과 도움을 통해, 하나님의 일시적인 진노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분의 영원한 진노에서 구원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다. 자연재해는 우리가 이 세상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이다. 이 세상을 위해 예수님은 죽으셨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영원의 관점을 가지게 되면 자연재해의 고통은 앞으로 불못에 던져질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통당할 때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인다. 이웃 나라의 핍박에 회개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방탕한 아들에 관한 예수님의 이야기까지 성경에는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수많은 예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재해를 수확할 시기가 곧 무르익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진실을 말해 보자(Let’s Tell the Truth)
폭풍이나 지진이 일어난 후, 목숨을 건진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들이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신학적인 답변을 요구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들은 죄에 대한 결과를 져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폭풍의 사나운 포효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소유하신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그들의 집이 흔들릴 때 느끼는 두려움은 그들이 지옥에 던져질 때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모두 지옥에 던져져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하고 그분의 진노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해주시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자비를 베푸셨음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사람들을 겁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 답은 성경에서 발견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잠 1:7).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화가 난다면 어떻게 될까?(What if People Become Angry With God?)
사람들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화를 내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거만함을 볼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도와야 한다. 아무도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우 때문에 그분께 불평할 권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오래전에 벌써 지옥에 던져졌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저주하기보다는 그들을 경고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적인 길을 따라 지옥에 가는 것을 내버려두실 모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날마다 그들을 부르신다. 그분은 사과나무의 꽃이 피는 것을 통하여, 새들의 노랫소리를 통하여, 산들의 장엄함을 통하여, 무수한 별들의 반짝임을 통하여 그들을 조용하게 부르신다. 그분은 그들의 양심을 통하여,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그들을 부르시지만, 그들은 그분의 부르심을 무시하였다.
물론,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여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하여 그분을 무시하면, 그분은 그들의 관심을 얻으시기 위해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하실 정도로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신다. 폭풍, 지진, 홍수, 기근은 그런 과감한 조치의 일부분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재난을 통하여 사람들이 겸손해지고 정신을 차리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불공평한가?(Is God Unfair in His Judgment?)
우리가 오직 성경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과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바르게 생각할 수 있다. 성경적인 관점이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불평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자비를 받고 있다.
이 주제에 관련하여, 예수님은 그 당시의 한 재난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셨다. 누가복음을 보면,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1-5).
빌라도의 손에 죽은 갈릴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빌라도의 손에서 구해주시지 않은 것은 공평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에 따르면, 살아남은 갈릴리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보다 죄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얻은 것이 아니다 – 그들은 더 큰 자비를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당신들은 모두 죄인이다. 죄에는 결과가 따른다. 지금, 당신이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회개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비유로서 이런 비극을 설명하셨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눅 13:6-9).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에 대한 예증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쓸모없는 나무를 찍어버리라!”라고 소리치지만, 그분의 자비는 “아니, 열매를 맺도록 시간을 더 주자”라고 간청한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마다 모두 그 나무와 같다.
우리가 폭풍과 홍수를 꾸짖을 수 있을까? (Can We Rebuke Hurricanes and Floods?)
자연재해에 대한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만일 우리가 충분한 믿음이 있다면, 자연재해를 꾸짖고 그것의 발생을 막을 수 있을까?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희망 또는 억측이다. 성경에는 우리가 폭풍을 꾸짖을 수 있고 잠잠하게 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권적으로 주시는 믿음을 떠나서) 그렇게 행할 수 없다
좀 더 깊이 설명해보자. 한 사람이 믿음을 갖고 폭풍을 꾸짖을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가 하나님께서 폭풍이 특정 지역을 타격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때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다시피, 하나님은 바람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므로 폭풍에 대한 책임을 지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폭풍의 발생을 명령하신 상황에서 누군가가 확신적인 믿음을 갖고 그것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자비를 베푸시거나, 그분께서 심판하시려는 사람들이 회개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마음을 바꾸신 경우이다(한 예로, 요나의 시대의 니느웨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셨다 할지라도, 아무도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셨고 그가 폭풍을 꾸짖고 잠잠하게 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한 이상, 폭풍을 꾸짖고 잠잠하게 할 만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이제까지 큰 바람을 꾸짖으시고 잠잠하게 하신 유일한 사람은 예수님뿐이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린도전서 12:7-11에 열거된 아홉 가지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믿음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성령의 모든 은사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은사는 오직 성령님의 뜻대로 역사한다(고전 12:11을 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특별한 믿음을 주셔서 닥쳐오고 있는 폭풍을 꾸짖게 하시지 않는 한, 당신은 그 길에 들어서서 믿음으로 행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 곳을 벗어나야 한다! 나는 또한 당신이 하나님의 보호를 위해 기도하고, 그분께서 심판하시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간구하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목숨을 살려 주시기를 간구하기를 권한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에 배가 두 주 동안 광풍을 만났지만, 그는 바람을 꾸짖음으로써 잠잠하게 하지 않았음을 주목하라(행 27:14-44을 보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배에 있었던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배가 파선하였지만 276명 모두 살아남았음을 주목하라(행 27:24, 34, 44을 보라). 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이유가 바울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1]두 가지 가능한 반대 의견에 대한 답변이 있을 수 있다. (1) 유다는 모세의 시체에 대한 미가엘과 사탄 사이의 변론을 언급하였지만, 실제 전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유다는 미가엘이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 1:9)라고 하였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2) 엘리사와 그의 사환이 도단 성에서 아람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엘리사는 하나님께 그의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여달라고 기도하였다(왕하 6:15-17). 그 결과, 그의 사환은 우리가 영적 영역에서 천사들의 군대의 지휘를 받는다고 가정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 천사들이 마귀들과의 전투에 참여했다거나 참여하고자 한다는 것을 명확히 나타내지는 못한다. 천사들은 가끔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진노를 내리실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열왕기하 19:35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천사는 앗수르 군사 185,000명을 쳤다.
[2]예를 들어, 마 1:20; 2:13, 19; 4:11; 눅 1:11-20, 26-38을 보라.
[3]이 전체 구절은 또한 욥이 어떤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두려움을 통해 사탄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음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욥에 관하여 사탄에게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강조 추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나의 책, “하나님의 시험” 175-181페이지에서 자세하게 다루었다. 이 책은 우리의 웹 사이트 [4]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는 시험을 제한하심을 나타내는, 곧 우리를 시험하는 자를 제한하심을 나타내는 고린도전서 10:13을 보라.
[5]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선거에서 투표하지 말라는 뜻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자초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사람을 세우게 되며 악인은 다른 악인을 선출한다. 이러한 이유로, 의인은 투표해야 한다. 또한, 신구약 성경 모두가 우리에게 정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렘 29:7; 딤전 2:1-4)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누구를 세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때로는 악한 정부 지도자의 형태로 내려지며, 대부분 국가는 심판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자비하심을 구하여 우리의 나라가 받아야 할 모든 심판을 다 받지 않게 할 수 있다.
[6]하나님께서 바람을 제어하심을 증명하는 다른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창 8:11, 출 10:13,19; 14:21; 15:10; 민 11:31; 시 48:7; 78:76; 135:7; 147:18; 148:8; 사 11:15; 27:8; 렘 10:13; 51:16; 겔 13:11, 13; 암4:9, 13; 욘 4:8; 학 2:17. 이 같은 예에서, 하나님은 바람을 심판의 수단으로 사용하셨다.
[7]하나님께서 기근을 일으키신다는 추가적인 근거를 보려면, 신 32:23-24; 삼하 21:1; 24:12-13; 왕하 8:1; 시 105:16; 사 14:30; 렘 14:12, 15-16; 16:3-4; 24:10; 27:8; 34:17; 42:17; 44:12-13; 겔 5:12, 16-17; 6:12; 12:16; 14:21; 36:29; 계 6:8; 18:8을 참조하라.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께서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5:45). 하나님은 비를 제어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