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 땅을 떠나실 것이며 언젠가는 다시 오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그들을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다(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휴거”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충실한 열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강조 추가).
예수님의 이 말씀은 열한 제자가 살아 있을 동안 그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가능성을 분명하게 암시한다. 실제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후, 제자들은 그분께서 그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또한 반복적으로 제자들에게 그분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라고 경고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그들이 살아 있을 동안 재림하실 것이라는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암시한다(예를 들어, 마 24:42-44을 보라).
서신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Jesus’ Imminent Return in the Epistles)
신약 서신을 쓴 사도들은 예수님이 1세기의 독자들이 살아 있을 동안 재림하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를 들어, 야고보는 이렇게 썼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강조 추가).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의 생애에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인내하라고 권면했을 이유가 없다. 그는 주님의 강림이 가깝다고 믿었다. 문맥적으로 보아, 야고보는 교회가 박해를 받을 당시에 이 글을 썼으며(약 1:2-4을 보라),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주님의 재림을 바라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예수님이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에 재림하신다고 분명하게 믿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강조 추가).[1]
이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이 천국에서 재림하실 때에, 죽은 신자들의 몸이 부활하게 되며, 살아 있는 신자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됨”(휴거)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예수님이 천국에서 “그분 안에서” 자는 자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휴거 때 천국의 신자들의 영혼이 그들의 부활한 몸과 결합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을 쓸 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1:13, 4:7, 13, 강조 추가).[2]
마지막으로, 요한이 교회에 편지를 쓸 때에 그는 마지막 때가 가까웠으며 그 당시 독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2:18, 28, 3:2-3, 강조 추가).
주님의 지연(His Delay)
지난 이천 여년을 돌아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이 기대했던 만큼 빨리 오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 당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떠나신 후로 오랫동안 오시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벧후 1:13-14을 보라), 베드로의 생이 마감되는 시점까지 예수님이 여전히 재림하시지 않음으로 인하여 베드로는 그의 마지막 서신에서 재림을 의심하는 자들을 향해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3-10).
베드로는 예수님의 지연이 그분의 사랑과 자비 때문이라고 긍정했다 – 그분은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그는 또한 예수님의 재림이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긍정하였다. 그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큰 진노하심으로 오실 것이다.
우리가 보겠지만, 성경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몇 년 전부터 세상에는 전례 없는 대환난이 임할 것이며 악인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한다. 요한계시록의 대부분 주제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쓰고 있다. 우리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성경은 미래에 칠 년간의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교회의 휴거가 그 칠 년 내에 또는 가까운 어떤 시점에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휴거는 정확히 언제 일어나는가?(When Exactly Does the Rapture Occur?)
휴거의 정확한 시간에 관한 질문은 기독교인들을 종종 분열시키는 한 가지 질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휴거가 칠 년 환난 전에 발생하며, 따라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휴거가 정확히 칠 년 환난의 중간 지점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휴거가 칠 년 환난의 중간 지점을 지나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휴거가 환난이 끝나는 시점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문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이 분열할 가치가 없으며, 네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휴거가 미래의 칠 년 기간 내에 또는 그것과 가까운 시점에 발생한다는 데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수천 년의 역사를 놓고 보면 매우 작은 부분에 속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일치 때문에 분열되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동의하는 부분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믿는 것과는 관계없이 그것들이 실제로 일어날 일들을 개변시킬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 25년 동안의 삶 속에서 줄곧 휴거가 칠 년 환난 전에 일어난다고 믿었음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 믿었던 것은 내가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고, 또 나 자신도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자세히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성경을 공부했을 때, 나는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럼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당신을 나의 편에 서도록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 사랑해야한다!
감람산 강화(The Olivet Discourse)
먼저 마지막 때 및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기초적인 말씀인 마태복음 24장을 보도록 하자. 마태복음 24장은 25장과 함께 감람산 강화로 알려졌는데, 그것은 이 두 장의 말씀은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그분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3]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며, 강화의 대상인 예수님의 제자들은 휴거의 시기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1-3).
예수님의 제자들은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그들은 특히 성전 건물이 언제 파괴되고(예수님의 예언대로)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성전 건물이 로마 군대에 의해 기원 70년에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이 아직까지 자신의 교회를 모으러 돌아오시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사건은 동시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Jesus Answers Their Questions)
마태가 첫 번째 질문인 성전 건물의 미래 파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기록하지 않은 반면,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기록한 것 같다(눅 21:12-24을 보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분의 재림과 세상 끝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 바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4-8, 강조 추가).
이 말씀은 예수님이 그분의 1세기 때의 제자들이 그분의 재림 전까지 살아있으리라는 것을 믿으셨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분께서 “너희“라는 대명사를 사용한 횟수를 주목하라. 예수님은 “너희”라는 대명사를 24장에서만 최소한 20번 사용하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그분의 모든 청취자들은 예수님이 예언하신 것을 볼 때까지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모든 제자들이 오래전에 죽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그들을 속였다고 결론 내릴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도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모르셨다고 봐야 한다(마 24:36을 보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를 들었던 사람들은 살아있을 동안 그분의 재림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실제로 매우 컸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그분의 제자들이 거짓 그리스도에 의해 속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거짓 그리스도이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거짓 그리스도를 멋진 구세주로 간주하게 된다.
예수님은 전쟁,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며, 그런 사건들이 재림의 징후가 아니라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징후들이 지난 이천 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다음 말씀들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들이다.
전 세계적인 대환난의 시작(Worldwide Tribulation Begins)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9-14, 강조 추가).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에게 “당신은 살아 있을 동안 이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틀림없이 긍정적일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라는 대명사를 계속 사용하셨다.
우리가 읽다시피, “재난의 시작”이후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전례 없는 전 세계적인 박해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만국” 또는 “모든 민족과 족속”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수백 년이라는 막연한 시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을 가리키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다음 구절에서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씀은 분명히 그리스도인 신자들로부터 실족한 사람들이 다른 신자들을 미워함을 가리키신 것이다. 왜냐하면, 불신자는 “실족”할 수 없으며 그들은 이미 서로 미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세계적인 박해가 시작되면, 그 결과로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배교가 이어질 것이다. 그들이 진짜 신자이든 거짓 신자이든, 양이든 염소이든,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한때는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신자들을 박해하는 권세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 결과로 전 세계의 교회가 정화될 것이다.
그다음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중 하나는 요한계시록에서 적그리스도의 공범으로 특별히 묘사되고 있다(계 13:11-18; 19:20; 20:10을 보라). 불법은 사람의 마음속에 조그마한 사랑도 없을 만큼 성할 것이며 죄인들은 완전히 무정해지게 된다.
순교자와 생존자(Martyrs and Survivors)
비록 예수님께서 신자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지만(24:9을 보라), 분명한 것은 모든 신자가 다 죽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24:13을 보라). 즉, 그들이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을 받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버리고 실족하게 하는 유혹을 이겨낸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하늘에서 그들을 모으실 때에 구원받게 될 것이다. 환난과 구원의 시간은 선지자 다니엘에게도 간결하게 계시되었다.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단 12:1-2).
그 때에도 예수님께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문자적으로,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구원의 은혜가 만민에게 임할 것이고,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실 것이며 그제야 끝이 올 것이다.[4] 우리는 흥미롭게도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 같은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강조 추가).
일부 사람들은 그 때에 천사가 복음을 선포하는 이유는 7년 환난 때에 휴거가 이미 발생하여 모든 신자가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추측일뿐이다.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
선지자 다니엘은 적그리스도가 실제로 7년 환난의 중간에 예루살렘의 중건된 성전을 차지하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선포할 것이라고 계시 받았다(단 9:27을 보라, 우리가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점을 염두에 두시고 감람산 강화를 계속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5]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15-22).
이것은 예수님이 전에 말씀하신 환난(24:9을 보라)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다.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선언할 때,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박해가 임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며 모든 사람이 그를 하나님으로 모실 것을 바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추종자들은 곧 잡아 죽여야 할 나라의 공식적인 원수로 전락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에 있는 자들은 지체없이 산으로 도망해야 하며 어떤 것도 도망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는 전 세계 신자들이 그 사건이 일어날 때에 먼 곳으로 도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보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온 세상이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아 그를 그리스도로 여기며 그에게 충성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선포할 때, 사람들은 그를 믿고 그에게 경배할 것이다. 그가 진짜 하나님 –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 에 대해 신성모독의 말을 할 때 그는 전 세계의 미혹당한 사람들이 그에게 경배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도록 영향 줄 것이다(계 13:1-8을 보라).
예수님은 환난의 날들을 “감하시는 것”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들을 궁극적으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24:22).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신다”는 것은 그분께서 하늘에서 나타나시고 그분의 백성들을 모으실 때를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뒤 얼마 뒤에 구원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예수님은 그분의 청취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신성을 선언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을 살아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그 사건이 있기 전에 신자들은 천국으로 휴거될 것이라는 관점과 대조된다. 만일 당신이 베드로, 야고보 또는 요한에게 예수님은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신성을 선언하기 전에 재림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인가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도를 향한 전쟁(War Against the Saints)
성경의 다른 말씀도 신자들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예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요한은 이러한 계시를 받았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계 13:5-7, 강조 추가).
적그리스도가 마흔두 달 또는 정확히 3년 반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음을 주목하라. 흥미로운 것은 이것은 정확히 7년 환난의 절반이다. 적그리스도가 “일할 권세”를 받은 것은 7년 환난의 마지막 마흔두 달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이 끝나고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그분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과 싸울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권세도 완전히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적그리스도의 “일할 권세”는 어떤 특별한 권세를 말한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는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일부 권세를 강의적으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니엘서에서 읽다시피, 이 특별한 “일할 권세”는 그가 성도들을 이기기 위해 받은 것일 수 있다.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1-22, 25, 강조 추가).
다니엘은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 두 때와 반 때”를 지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요한계시록 12장 6절과 14장과의 비교에 따라, 이 난해한 구절은 3년 반 동안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2:6에 따르면, 어떤 상징적인 여자는 광야의 예비된 곳에서 1,260일 동안 “양육”받았다고 하는데 이 시간은 일 년을 360일로 계산했을 때 마침 3년 반이 된다. 그다음, 여덟 구절 뒤에, 그 여자는 다시 한 번 언급되는데, 그녀가 광야의 한 곳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일 또는 3년 반 동안과 같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 “한 때”는 일 년, “두 때”는 이 년, “반 때”는 반 년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12:14의 이 표현은 다니엘서 7:21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성도들이 3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인 바 될 것이며, 그 시간은 요한계시록 13:5에서 말씀하신 적그리스도가 “행할 권세”를 가진 시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는 이 두 번의 마흔두 달의 기간이 모두 동일한 기간이라는 말씀은 없다. 만일 그것이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신성을 선언한 7년 환난의 중간 시점부터 시작된다면, 성도들은 다음 3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인 바 되며 예수님은 7년 환난이 끝날 때 또는 끝날 무렵에 하늘에서 나타나시고 성도들을 모으실 때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마흔두 달이 7년 환난 기간의 다른 시점에서 시작한다면, 우리는 휴거가 7년 환난이 끝나기 전의 어느 시점에 발생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 중 후자 의 어려움은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신성을 선언함으로 인해 성도들이 위험에 놓여 산으로 도망하기 전에 그들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인 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논리적이 돼 보인다.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 중 전자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읽은 것처럼 대환난과 전 세계적인 심판을 내리실 때 성도들이 여전히 이 땅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나중에 이 어려움을 살펴볼 것이다.
지금은 감람산 강화로 다시 돌아가 보자.
거짓 메시아(False Messiahs)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더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마 24:23-28).
예수님께서 너희라는 대명사를 많이 사용하셨음을 다시 한 번 주목하라. 감람산에 있던 청중들은 살아 있는 동안 큰 표적을 행할 수 있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임같이 재림하시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신자들은 실족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매우 무서웠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표적으로 인해 매우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제자들에게 그분이 재림하시기 전에 있을 일들에 대해 경고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많은 사람들처럼 미혹되지 않기를 바라셨다. 진정한 그리고 견고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임하실 것을 기다리는 반면, 그분의 진정한 추종자가 아닌 사람들은 독수리가 광야에 버려진 시체에 끌리듯이 거짓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 간다.
하늘의 징후(Signs in the Sky)
예수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29-31).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의 이 부분에 대해 그 당시 유대인들도 매우 익숙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이사야와 요엘이 말했던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 곧 “주님의 날”,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할 때(사 13:10-11; 욜 2:31을 보라)와 같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세상의 모든 주민들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영광 중에 임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은 통곡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 예수님의 천사들은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는데”, 이것은 신자들이 실제로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날 것이며 이 일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날 것이다.
다시 한 번, 당신이 감람산 강화 당시에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이 적그리스도와 대환난이 있기 전에 오시는지 아니면 있은 후에 오시는지를 묻는다면 그들은 당연히 있은 후에 오실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재림과 휴거(The Return and the Rapture)
감람산 강화의 이 부분은 바울이 쓴 서신서의 한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 그 사건은 틀림없이 교회의 휴거에 대해 쓴 것이나 많은 주석가들은 그것이 대환난이 시작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장의 앞부분에서 보았던 다음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4:13-5:3, 강조 추가).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며 신자들은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썼다. 이것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24:30-31에서 묘사하신 모습과 같아 보인다. 예수님은 그것이 분명 적그리스도와 대환난이 일어난 후에 발생한다고 하셨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 일어날지에 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는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는 “주님의 날”에 일어나며 그날에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그분의 교회를 데려가며 “평안과 안전”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진노와 멸망이 이를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가 진노와 함께 재림하시는 것에 관하여 나중에 데살로니가에 쓴 서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6-10, 강조 추가).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박해를 받던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살전 1:4-5을 보라) 안식을 주시며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신자들에게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응당한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7년 환난이 시작하기 전에 교회를 데려가신다는, 또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비밀스럽게 나타나시고 조용하게 교회를 데려가신다고 묘사되는 환난 전 휴거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바울의 말은 정확히 예수님이 마태복음 24:30-31에서 설명하신 것과 같다. 그분은 환난이 끝날 때 또는 끝날 무렵에 재림하셔서 신자들을 데려가시고 불신자들에게 그분의 진노를 쏟을 것이다.
주님의 날(The Day of the Lord)
나중에 같은 서신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살후 2:1-2).
첫째, 바울의 주제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휴거임을 주목하라. 바울이 우리가 그분 앞에 “모인다”라고 쓸 때 사용한 단어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24:31에서 천사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으리라”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와 동일하다.
둘째,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13-5:2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런 사건들이 “주님의 날”에 일어난다고 하였음을 주목하라. 그보다 더 분명할 수 없다.
바울은 계속하여 말하였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3-4, 강조 추가).
바울에 의하면 주님의 날은 반드시 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이 시작하는데 데살로니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배교하는 일이(아마도 예수님이 마태복음 24:10에서 말씀하신 많은 사람들의 실족을 말할 것이다) 있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않으며,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신의 신성을 선언한 후에야 그날이 이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신성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휴거 또는 주님의 날이 올 것을 예상할 수 없음을 명확하게 말하였다.[6]
바울은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재림과 적그리스도에 멸망에 대해 말하였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5-10).
바울은 그리스도가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적그리스도를 폐하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만일 이 “나타나심”이 아홉 구절 앞에서 언급한 휴거 때의 그분의 강림하심과(2:1을 보라) 같다면, 적그리스도는 교회가 공중에서 모여 주님을 영접할 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에 의해 확증된다. 우리는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계 19:11-16을 보라),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의 멸망(19:17-21을 보라), 사탄의 결박(20:1-3을 보라)과 “첫째 부활”(20:4-6을 보라) 곧 7년 환난 중에 순교한 사람들의 부활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이 진짜 의인의 첫 번째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부활이라면, 휴거와 그리스도의 진노의 재림이 적그리스도의 멸망과 동시에 발생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휴거 때 몸이 부활한다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살전 4:15-17을 보라).[7]
준비 되라(Being Ready)
감람산 강화에 다시 돌아가 보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8]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2-35).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시지 않았는데 그것은 감람산 강화의 요점이다. 제자들은 전 세계적인 환난, 배교,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의 일어남, 적그리스도의 신성 선언, 그리고 그분의 재림이 가까워짐에 따라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모든 일들”을 보게 될 때, 그분이 “곧 문 앞에” 이르신 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림하시기 몇 년, 몇 개 월 또는 몇 일 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 후, 바로 그분의 재림의 정확한 시간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이 구절은 문맥을 떠나서 얼마나 자주 인용되는지 모른다! 그것은 종종 예수님은 언제든지 재림하시고 교회를 휴거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에 대해 모른다는 관점을 지지하기 위해 인용된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아, 그것은 예수님이 의미하신 바가 아니다. 그분은 단지 제자들에게 그분이 재림하시기 직전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말씀해 주심으로써 그들이 그분의 재림에 준비되기를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신 것뿐이다. 그분은 단순히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그들에게 계시되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셨다. 또한,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그분께서 7년 환난 전에 오셔서 비밀리에 교회를 휴거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7년 환난이 끝날 때거나 끝날 무렵에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정직하게 문맥을 살펴본다면 이런 관점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
주님의 재림 – 완전한 기습인가?(His Return–A Complete Surprise?)
휴거가 환난의 마지막 무렵 또는 마지막 때에 발생한다는 관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같은 재림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같이 갑작스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재림은 환난의 발생에 따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휴거가 반드시 환난 전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들은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아직도 7년 또는 더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성경의 말씀을 따라 준비되고 깨어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틀렸다.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의 요점은 제자들이 환난이 끝날 때 또는 끝날 무렵의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재림 전에 발생할 많은 표적들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다. 왜 감람산 강화에서 예수님은 그분의 재림이 그 시점부터 적어도 7년 뒤에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 준비되고 깨어 있으라는 경고를 그렇게 많이 하셨을까? 예수님은 그분의 재림이 몇 년이 지나야 일어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준비되고 깨어있어야 한다고 믿으셨음이 분명하다. 사도들이 자신의 서신에서 신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준비되고 깨어있으라고 권면했던 것은 단지 예수님을 모방한 것이다.
또한, 환난 전의 휴거만이 준비되고 깨어 있으라는 권면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첫 번째 재림은 환난이 끝나기 7년 전에 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첫 번째 재림은 언제든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환난이 끝나기 7년 전에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 세계 국세가 7년 환난을 일으킬 준비가 되지 않은 이상,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예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세계 국세는 예측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이 정직하다면, 예수님이 세계정치 상황으로 인해 오늘이나 내일에는 재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말할 것이다. 7년 환난이 일어나기에는 아직도 성취되지 않은 예언된 사건들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곧 다니엘서에서 살펴보겠지만,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 7년 동안의 언약을 맺게 되는데 그것이 환난의 시작이 된다. 따라서, 휴거가 7년 환난이 끝나기 전에 발생한다면, 반드시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의 언약을 맺을 때 일어난다. 정치적인 요소로 인해 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환난 전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또한, 환난 전 휴거의 옹호자들도 예수님이 환난의 끝에 오신다고 믿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두 번째 재림의 정확한 날짜를 계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휴거가 일단 발생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신 그 날을 7년 앞서 계산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실제로 하신 말씀으로부터 보아, 그분은 그분의 재림이 예상 못할 비밀스러운 일이 되기를 원하시지 않았다. 사실, 그분은 그것이 특정 환난들을 통해 예측될 수 있기를 바라셨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세상처럼 방심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았다. 그분은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9]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37-44).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의 명백한 관심사는 제자들이 그분의 재림에 준비되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감람산 강화의 주된 요점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준비되고 깨어있으라고 하신 많은 경고들은 그분의 재림이 갑작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 때까지 준비되고 깨어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 전에 언제든지 휴거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자신이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준비가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준비되지 못했을 수 있다. 만일 그들이 환난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적그리스도의 통치 하의 전 세계적인 박해 속에 있다면 유혹 앞에서 쉽게 실족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이 실제로 발생할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만일 당신이 베드로, 야고보나 요한에게 언제 예수님의 재림을 볼 수 있다고 예상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표적들이 발생한 후에야 그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환난이나 적그리스도가 일어나기 전에 그분을 볼 수 있다고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밤의 도둑(A Thief in the Night)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분이 재림하실 때 깨어있게 하기 위하여 많은 표적들을 설명하실 때 “밤의 도둑”이란 비유를 드셨음을 주목하라. 그러므로 “밤의 도둑”이란 비유를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없다.
바울과 베드로는 “주님의 날”에 관해 쓸 때 모두 “밤의 도둑”이란 비유를 들었다(살전 5:2-4, 벧후 3:10을 보라). 그들은 그 비유가 7년 환난의 끝 또는 끝날 무렵에 임할 예수님의 진노의 재림과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의 비유를 정확하게 해석했다. 그는 표적들에 대해 깨어 있고 예수님을 순종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어둠에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들에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밤의 도둑처럼 오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오직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만이 놀라게 될 것이다(예수님이 계 3:3과 16:15에서 “밤의 도둑”의 비유를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용하신 것도 보라).
감람산 강화에서 이 시점부터,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제자들에게 그분의 재림에 준비되라고 권계하셨다. 같은 시점에서 그분은 악한 종의 비유,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에 대한 심판에 대한 예언 등(모두 읽을 가치가 있다)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어떻게 준비할지를 알려주셨다. 거의 모든 경우에, 그분은 그분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셨다(마 24:50-51; 25:30, 41-46을 보라). 그분이 재림했을 때 그분의 뜻대로 살고 있어야만 준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10]
다른 이의(Another Objection)
휴거가 환난이 끝날 때 또는 끝날 무렵에 일어난다는 데 대해 일부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성경적으로 노아, 롯 그리고 애굽에서의 이스라엘과 같이 입증된 예로부터 보아 의인은 종래로 악인들과 함께 처벌되지 않았다는데 근거한다.
확실히, 우리에게는 의인이 7년 환난 중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좋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많은 선례와 약속들에 어긋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살전 1:9-10; 5:8을 보라).
그러나 예수님은 대환난 기간에 의인들은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이 아닌 악인의 손에 붙여질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 그것은 약속된 박해이다. 7년 환난 중에 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마 24:9; 계 6:9-11; 13:15; 16:5-6; 17:6; 18:24; 19:2을 보라). 많은 사람들은 목 베임을 당할 것이다(계 20:4을 보라).
따라서, 만일 특정 국가의 모든 신자들이 순교했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나라 전체에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한 나라에 신자들이 살아 있다면, 하나님은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을 것이다. 모세의 시대에 애굽을 심판하실 때, 그분은 이 능력을 증명하셨다. 이웃 애굽사람들이 한 번 또 한 번의 심판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심지어 개 한 마리도 이스라엘을 향해 짖지 못하게 하셨다(출 11:7을 보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황충이 다섯 달 동안 땅의 악인들을 해하게 하셨지만, 이마에 특별한 인침을 받은 144,000명의 유대인 종들은 해하지 못하게 하신 것을 알 수 있다(계 9:1-11을 보라).
요한계시록에서의 휴거(The Rapture in Revelation)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아무데에서도 교회의 휴거를 읽을 수 없으며,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을 결박하시기 위해 오신 것 외에는 아무데에서도 그분의 나타나심에 대해 읽을 수 없다. 심지어 그 때까지 휴거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때에 환난 중 순교한 사람들의 부활은 언급되고 있다(20:4을 보라).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부활한다고 썼으며, 그것은 교회가 휴거하는 시기와 같은데, 이것은 이미 고려했던 다른 말씀들과 함께 보았을 때, 우리로 하여금 휴거가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에 묘사된 7년 환난이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6장과 7장에서 휴거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요한계시록 6:12-13에서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별들이 땅에 떨어진다고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기 전에 일어나는 두 가지 징후이다(마 24:29-31). 그런 다음, 7 장 에서, 우리는 천국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7:14)임을 읽게 된다. 그들은 앞 장에서 나온 다른 한 그룹의 사람들처럼(6:9-11을 보라) 순교자로 묘사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순교 당한 것이 아니라 휴거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 그들은 대환난 때 구원받은 신자들일 것이다.
단순히 요한계시록 6:12-13에서 묘사한 우주적인 사건이 마태복음 24:29-31의 예수님의 말씀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휴거가 그 사건들 뒤에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요한계시록 6:12-13의 우주적인 사건이 7년 환난 중에 발생한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만일 요한계시록 6:1-13 에 묘사된 사건들이 순차적이고, 휴거가 정확히 6:13 이후에 발생한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적그리스도(6:1-2를 보라), 전 세계적인 전쟁(6:3-4을 보라), 기근( 6:5-6을 보라), 전쟁, 기근, 전염병과 짐승으로 인한 땅의 사 분의 일의 죽음(계 6:7-8을 보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순교(계 6:9-11을 보라)가 있기 전에는 휴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게 한다. 물론 이 말씀에서 묘사한 모든 사건들이 7년 환난 전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환난 끝에 휴거가 일어나는, 7년 환난의 전반 과정을 묘사했을 수도 있다.
휴거가 7년 환난 전에 발생한다는 관점에 무게를 더 해 주는 사실은 바로 요한계시록 8장 이후에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 두 가지 일곱 심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중 후자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마친다는 말씀이 있다(15:1을 보라). 그러나 대접의 심판이 있기 전에, 요한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있는 것”(15:2)을 보았다. 이 승리한 성도들은 이미 휴거했을 수 있다. 반면에, 그들은 순교 당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성경의 말씀은 없다. 또한, 우리는 15장 2절이 그 근처에 설명된 장면과 어떤 연대적인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요한계시록에서 휴거가 7년 환난 전에 발생한다는 관점에 무게를 더 해 주는 또 다른 사실은 이것이다: 요한계시록 9:1-12에 기록된 다섯 번째 “나팔 심판”의 경우, 황충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9:4) 해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인침을 받은 사람은 144,000명의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했다(계 7:3-8을 보라). 따라서 다른 모든 신자들은 다섯 번째 “나팔 심판”이 이르기 전에 휴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황충들에게 쏘임당하는 것을 면할 수 없다. 또한, 황충은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9:5, 10), 휴거는 7년 환난의 끝에서 적어도 다섯 달 전에 발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논리 외에도 다른 방법들이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인침을 받은 다른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것이 만일 휴거가 다섯 번째 나팔 심판 이전에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이것은 또한 황충의 공격이 있기 전에 휴거하지 못한 144,000명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황충들을 통해 나타날 때 그것으로부터 보호받는 은총을 받았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나는 단지 휴거가 7년 환난이 끝날 무렵 또는 끝에 발생한다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고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심한 박해와 순교할 준비는 해야 한다.
환난 기간(The Tribulation Period)
성경이 7년 환난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우리는 환난의 기간이 7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요한계시록 외에, 아마도 성경에서 마지막 때에 관한 계시가 가장 많이 기록된 다니엘서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다니엘서 9장에서 우리는 다니엘이 그의 동료 유대인들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에 대한 공부를 통해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70년 동안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단 9:2; 렘 25:11-12을 보라). 이 70년이 거의 끝난다는 것을 깨달은 후, 다니엘은 기도하여 그의 백성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환난의 기간을 계시하였다. 다니엘서 9:24-27에 기록된 예언은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 중의 하나이다. 나는 그것을 괄호 안의 설명과 함께 아래에 인용했다.
네 백성[이스라엘]과 네 거룩한 성[예루살렘]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우리가 이것에 대해 보겠지만, 분명 70개의 7년, 또는 총 490년을 가리킨다]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어쩌면 이스라엘의 죄악의 정점인 자신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가리킬 수 있다] 그치며 죄가[아마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속죄를 가리킬 것이다]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속죄를 가리킴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하나님의 왕국에서 예수님의 지상 통치의 시작]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아마 성경이 씌어지는 것이 끝나거나 천 년 통치 이전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어쩌면 천 년 왕국의 건립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이 영은 BC 445년에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반포되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주 예수 그리스도]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총 예순 아홉 이레, 또는 483년]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이전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의 재건을 말한다] 예순두 이레 후에[BC 445년의 영이 있은 뒤 483년이 지난 시점을 말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1년을 360일로 보는 유대인의 달력에 따라 계산하면 예수님은 AD 32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장차 한 왕의[적그리스도] 백성이[로마인]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AD 70년에 디도와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킨다]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장차 오게 될 왕 – 적그리스도] 장차 많은 사람들과[이스라엘]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또는 7년 동안 – 이것은 환난의 기간이다]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3년 반 때 즈음이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의 유대인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때; 살후 2:1-4을 보라]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이다]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예수님에 의한 적그리스도의 패배](단 9:24-27, 강조추가).
특별한 490년(490 Special Years)
BC 445년에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법령이 반포돼서부터 하나님은 미래의 490년을 특별하게 배분하셨다. 하지만 그 490년은 순차적이 아니며 483년과 7년,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483년이 완성되었을 때에(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해), 시계는 멈추었다. 다니엘은 아마 시계가 거의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멈춰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그 시계는 다시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마지막 7년은 “환난”뿐 아니라 “다니엘의 일흔 번째 이레”를 가리킨다.
그 7년은 두 개의 3년 반으로 나누어진다. 우리가 다니엘의 예언에서 읽다시피, 중간 시점에서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깨고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다.” 그다음에 그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이다.[11]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언급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마 24:15).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유대에 있는 신자들은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마 24:16). 왜냐하면, 그것은 이 세상 누구도 본적이 없는 최악의 환난이 시작됐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마 24:21을 보라).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것 같이 요한은 그의 환상에서 “유대인의 도망”을 상징적으로 보았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유대의 신자들은 광야에 예비된 특별하고 안전한 곳에서 7년 환난의 나머지 시간, 정확히 3년 반 동안 “양육” 받게 될 것이다(계 12:6, 13-17). 요한은 그들의 도망에 분노한 사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는 것을 미리 보았다(계 12:17). 이 때문에 나는 전 세계의 신자들이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신성을 선언했을 때 먼 곳으로 도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의 마지막 계시(Daniel’s Last Revelation)
우리가 아직 고려하지 않은 다니엘서의 또 다른 흥미로운 구절은 마지막 12장이다. 그것은 한 천사가 다니엘에게 한 말씀이다. 나는 그것을 관호 안의 설명과 함께 아래에 인용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천사]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이것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24:21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환난일 것이다]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이것은 유대인들의 도망 또는 휴거 때 신자들이 구원받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의인과 악인들의 부활]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그들이 부활한 후, 의인은 새로운 몸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빛날 것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합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지난 세기 동안 교통과 지식의 놀라운 발전은 이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는 듯 하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요한계시록 12:6과 12:14에 대한 판독에 따르면 3년 반의 시간이다]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3년 반 동안 붙여진다는 다니엘서 7:25의 말씀처럼, 여기서도 7년 환난의 마지막 3년 반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천사가 말한 모든 일의 끝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질 때이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합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환난을 통해서임이 틀림없다]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이 두 사건 사이의 기간이 1,290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두 사건은 모두 7년의 중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두 사건이 일어난 후로부터 마지막 때에 매우 중요한 무언가가 일어나기까지 1,290일을 지내야 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1,290일은 360일을 일 년으로 계산했을 때 3년 반 그리고 30일이 되는데 이 기간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왜 30일이란 시간이 추가되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천사가 그 다음에 다니엘에게 한 말은 오묘함을 더 해 준다.] 마지막 때에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이에 우리는 신비의 또 다른 45일을 보게 된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다니엘의 부활에 대한 약속](단 12:1-13).
분명한 것은, 마지막 때에 추가된 75일 동안에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기다려야만 볼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을 읽는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 중의 하나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임을 알 수 있다. 한 천사는 요한에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다”(계 19:9)라고 말하였다. 아마 그것은 천사가 다니엘에게 말했던 것과 같은 축복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광스러운 잔치는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두 개월 반 정도 지나서 벌어질 것이다.
그 75일 동안에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에 기록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불못에 던져지고, 사탄이 결박당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지는 것(계 19:20-20:4을 보라)과 같은 다른 사건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천 년 왕국(The Millennium)
천 년 왕국은 예수님이 7년 환난 후에 천 년 동안 이 땅을 통치하시는 것을 말한다(계 20:3, 5, 7을 보라). 이사야는 거의 3천 년 전에 이 땅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예언하였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강조 추가).
마찬가지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의 아들이 무궁한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0-33, 강조 추가).[12]
천 년 왕국 기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모든 산 위에 뛰어난 시온산에서 다스리실 것이다. 그분은 모든 국가를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며 온 땅에 평화가 가득할 것이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2-4).
스가랴도 똑같이 예언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 20-23).
성경은 신자들이 실제로 그리스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릴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지금 얼마나 신실하게 사느냐에 따라 그분의 나라에서 상응한 책임을 지게 된다(단 7:27; 눅 19:12-27; 고전 6:1-3; 계 2:26-27; 5:9-10; 그리고 22:3-5을 보라).
우리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되지만, 그 때에 이 땅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을 가진 사람도 거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족장 시대의 수명이 회복되고 야생 동물도 잔인성을 잃게 될 것처럼 보인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 65:19-20, 25; 또한 사 11:6-9도 보라).
성경에는 미래의 천 년 왕국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특별히 구약 성경이 더 많다. 더 맣은 연구를 위해 이사야 11:6-16; 25:1-12; 예레미야 23:1-5; 요엘 2:30-3:21; 아모스 9:11-15; 미가 4:1-7; 스바냐 3:14-20; 스가랴 14:9-21; 요한계시록 20:1-6을 보라.
대부분의 시편도 천 년 왕국에 대한 예언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편 48편의 아래 구절을 읽어보라.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시 48:1-6, 강조 추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그분의 천 년 통치를 시작하셨을 때, 환난에서 생존한 이 땅의 많은 통치자들이 예수님의 통치에 대해 듣게 될 것이며 그것을 보러 직접 길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본 것에 의해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13]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에 대해 언급한 다른 시편을 보려면 아래의 장절을 참조하라. 2:1-12; 24:1-10; 47:1-9; 66:1-7; 68:15-17; 99:1-9; 그리고 100:1-5.
영원한 상태(The Eternal State)
천 년 왕국의 끝은 성경학자들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시작하는 “영원한 상태”의 시작을 표시한다. 고린도전서 15:24-28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 후에 모든 것을 아버지께 바칠 것이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예수님]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두셨다[시 8:6]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아버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그에게[아버지]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천 년 동안 결박당한 사탄은 천 년 왕국의 끝에서 풀려난다. 그 후 그는 겉으로는 예수님께 순종하는체 하지만 속으로는 반역하는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시 66:3을 보라).
하나님은 사탄이 그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셔서 그들 마음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어 그들이 정당한 심판을 받게 하실 것이다. 사탄의 미혹속에서, 그들은 모여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예수님의 통치를 뒤엎으려고 시도할 것이다. 전투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의 군대를 태워버리고 사탄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서 영원히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 20:7-10을 보라).
시편 2편에서도 이 전투에 대해 예언하였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드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최후의 심판(A Final Judgment)
영원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최후에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모든 연령대의 모든 악인들은 몸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5, 11-15을 보라). 하데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을 받은 후 불못인 게헨나에 던져질 것이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한다(계 20:14).
영원한 상태는 첫 째 하늘과 땅이 없어진 후 시작되며, 이것은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라는 이천 년 전의 예수님의 약속을 성취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베드로후서에서 예언한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실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4; 또한 사 65:17-18도 보라).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올 것이다(계 21:1-2을 보라). 우리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면적이 미국의 절반 크기인(계 21:16을 보라) 그 거룩한 성의 영광과 시간이 영원해지는 것의 경이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완벽한 사회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1]바울이 예수님께서 그의 동시대에 재림하실 수 있다고 믿었음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은 빌 3:20; 살전 3:13; 5:23; 살후 2:1-5; 딤전 6:14-15; 딛 2:11-13; 히 9:28이다.
[2]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그의 동시대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확신했음을 보여주는 다른 성경 구절은 벧후 1:15-19; 3:3-15이다.
[3]마가복음 13:3에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가 그 자리에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침 감람산 강화도 마가복음 13:1-37과 누가복음 21:5-36에 기록되었다. 누가복음 17:22-37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4]사람들은 종종 앞 뒤 문맥을 무시한 채 이 약속만 가지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전 세계 복음화 작업을 완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맥상으로 보면, 이 약속은 말세가 오기 전에 전 세계에 복음이 선포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5]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교회의 휴거가 정확히 칠 년 환난 전에 발생한다면, 그들은 모두 휴거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라는 예수님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게 된다.
[6]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는 대환난 기간에 거듭난 유대인 신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환난 전에 거듭난 사람은 이미 모두 휴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이방인 신자들에게 그들의 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은 칠 년 환난 중에 적그리스도가 그의 신성을 선언하기 전에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7]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20:4-6에서 언급한 부활은 실제로 첫째 부활의 두 번째 부분이며 첫째 부활은 휴거 때 그리스도가 처음 재림하셨을 때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해석의 근거는 무엇인가? 만일 요한계시록 20:4-6의 부활이 두 번째 부활이라면, 왜 성경은 그것을 “두 번째 부활”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을까?
[8]비록 그 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세대가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보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24:34의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할 때, 그 말씀은 그 모든 일이 한 세대에서 발생한다거나 그리스도인(또는 유대인)의 민족이(세대란 단어가 종종 민족으로 번역된다) 그 모든 일이 있기 전에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보아야 한다.
[9]이 예에서 심판을 받는 사람이 구경 데려감을 당한 사람인지 아니면 버려둠을 당한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종종 변론하고 있다. 요점은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준비될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준비된 정도가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10]분명히, 예수님께서 그분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 그분의 재림에 준비되라고 경고하신 것으로 보아 그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만일 그분께서 그들이 죄 때문에 준비되지 않아 받게 될 영원한 형벌에 대해 경고하셨다면, 그들은 죄 때문에 구원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로부터 거룩함의 중요성과 신자가 구원을 상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알 수 있다.
[11]물론, 이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나타낸다. 왜냐하면, 현재(이 글이 쓰인 2005년)까지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기 때문이다.
[12]이 성경 말씀은 우리가 성경 말씀을 오해함으로써 예언이 성취되는 시간을 쉽게 잘못 가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리아는 쉽고 논리적으로 그녀의 특별한 아들이 몇십 년 내에 다윗의 왕좌에 군림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그녀가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는데 이것은 마치도 예수님의 출생과 통치가 연속적인 것처럼 들린다. 마리아는 그들 사이에 적어도 이천 년이란 간격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도 예언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와 비슷한 가정을 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한다.
[13]다른 성경 말씀을 살펴보면, 천 년 왕국은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가 땅에 충만할 때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사 2:1-5; 60:1-5; 단 7:13-14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