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The Gifts of the Spirit)

제 17 장 (Chapter Seventeen)

성경에는 남자와 여자가 성령님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신약 성경에서 이런 초자연적인 능력은 “성령의 은사”라고 불린다. 이런 은사들은 획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 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신뢰성을 입증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초자연적으로 사용하실 가능성이 더 크므로 온전히 성별 되고 성령님께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한 면으로, 하나님은 어느 한 번 당나귀를 예언자로 사용하셨는데 그분은 원하시면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가 완벽하게 되어야만 사용하실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사용하실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열되어 있는데 모두 9가지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8-10).

각각의 은사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 성령의 은사로 쓰임 받는 것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구약의 선지자, 제사장, 왕, 그리고 초대 신약 교회의 목회자들은 성령의 은사를 분류하거나 정의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모두 성령의 은사대로 쓰임 받았다. 그럼에도, 신약 성경에서 성령의 은사를 분류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바울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고전 12:1)라고 썼다.

9가지 은사에 대한 분류(The Nine Gifts Categorized)

성령의 9가지 은사는 현대에 와서 사람들에 의해 세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1) 말하는 은사, 즉 각종 방언을 말함, 방언의 통역, 예언; (2) 계시의 은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그리고 (3) 능력의 은사: 기적을 행함, 특별한 믿음, 치유의 은사이다. 그 중 세 가지 은사는 뭔가를 말하는 것이고; 세 가지는 뭔가를 계시하는 것이고; 세 가지는 뭔가를 행하는 것이다. 이 은사 중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와 통역하는 은사를 제외한 모든 은사는 구약에서 볼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신약에만 있는 독특한 은사이다.

신약 성경에는 “능력의 은사”를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할지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며 “계시의 은사”를 어떻게 적절할지에 대한 가르침도 아주 적다. 그러나 “말함의 은사”의 적절한 사용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양의 가르침이 바울을 통하여 주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로, 교회 모임에서 “말함의 은사”가 가장 많이 나타나고, “계시의 은사”는 적게 나타나며, “능력의 은사”는 가장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모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제일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둘째로, “말함의 은사”는 사람들 사이의 협력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아 보이기 때문에 잘못 다뤄지기 가장 쉽다. 치유의 은사를 파괴하기보다는 예언을 파괴하기가 훨씬 쉽다.

성령님의 뜻을 따라 (As the Spirit Wills)

성령의 은사가 사람이 아닌 성령님의 뜻을 따라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1 강조 추가).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4 강조 추가).

사람이 특정 은사로 자주 쓰임 받을 수는 있으나 어떤 은사도 소유할 수는 없다. 당신이 어느 한 번 기적을 행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하여 당신이 원할 때마다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당신이 앞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음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각 은사에 대한 성경의 몇 가지 예를 간단히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무한한 방법으로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은사가 매번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이 9가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정의 내린 적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그것들의 명칭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성경의 예를 살펴보고 각각의 은사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를 결정함으로써 표면적인 차이에 의해 그것들을 정의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초자연적인 은사를 통하여 그분 자신을 나태내는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기에 우리가 내린 정의에 지나치게 엄격한 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은사들은 실제로 몇 가지 은사들의 조합과 같을 수도 있다.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강조 추가).

능력의 은사(The Power Gifts)

1) 치유의 은사: 치유의 은사는 분명히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들은 종종 갑작스럽게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으며, 나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 이전 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 가의 앉은뱅이를 치유할 때 그분을 통해 치유의 은사가 나타난 예를 살펴본 적이 있다(요 5:2-17을 보라).

하나님은 엘리사를 사용하셔서 우상 숭배자인 나병 환자 나아만을 치유하셨다(왕하 5:1-14을 보라). 우리가 누가복음 4장 27절에서 나아만이 치유받은 것에 관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엘리사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어떤 나병환자든지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갑자기 초자연적인 영감을 받아 나아만에게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지시했던 것이며 나아만은 결과적으로 순종함으로 인해 나병으로부터 깨끗해졌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사용하셔서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치유하셨다(행 3:1-10). 이 초자연적인 기적은 앉은뱅이를 치유하였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베드로가 선포한 복음을 듣도록 인도하였으며, 그날 약 오천 명의 사람이나 교회에 추가되었다. 치유의 은사는 종종 병든 사람을 치유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된다.

베드로는 그날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 앉은뱅이를 치유하신 이유가 그의 개인적인 권능이나 경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 기적을 행하기 두 달 전만 하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고백했었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의 첫 부분에서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원하시면 우리도 사용하실 것이라는 신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베드로가 그 사람이 치유받은 이유를 설명하려 할 때, 그것을 “치유의 은사”로 분류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베드로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그와 요한이 앉은뱅이 곁을 걸어 지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자신한테 그 사람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앉은뱅이는 곧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베드로는 이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 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그가 걷기를 기대하는 것에는 특별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런 특별한 치유의 은사와 함께 믿음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치유의 은사가 복수인 것은(치유의 “은사들”을 가리킴) 다른 병을 치유하는 은사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치유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은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사역 속에서 특정한 병을 다른 병보다 더 자주 치유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복음 전도자 빌립은 특별히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행 8:7)을 치유하는데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몇 세기 동안, 어떤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치유의 은사가 실명과 난청, 그리고 심장 질환과 같은 병을 고치는 데에 가장 자주 나타났다.

2) 믿음과 기적을 행하는 은사: 믿음과 기적을 행하는 은사는 매우 유사해 보일 것이다. 이 두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갑자기 불가능한 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두 은사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믿음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지만,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적을 베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믿음의 은사를 때로는 “특별한 믿음”이라고도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일반적인 믿음을 뛰어넘은 갑작스럽게 받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들음에서 생기지만, 특별한 믿음은 성령님에 의한 갑작스러운 전이에서 생긴다. 특별한 믿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들이 갑자기 가능해 보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은 의심 자체를 할 수가 없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기적을 행하는 믿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는 “특별한 믿음”이 어떻게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들이 왕의 우상 앞에 절하기를 거부함으로 인해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때, 그들은 모두 특별한 믿음의 은사를 받았다. 풀무불에 던져져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을 초월한 것이다! 이 세 젊은이가 왕 앞에서 보여준 믿음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강조 추가).

그들이 풀무불에 던져지기 전에 믿음의 은사를 받았음을 주목하라.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져내실 것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엘리야가 아합 왕의 통치 시절 3년 반 동안의 기근 속에서 날마다 까마귀들이 날라온 음식을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특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왕상 17:1-6). 하나님께서 새를 사용하셔서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날라오게 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일반적인 믿음을 초월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까마귀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날라다 줄 것이라고 말씀으로 약속하신 적은 없지만, 우리는 일반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마 6:25-34을 보라).

기적을 행하는 믿음은 모세의 사역 속에 꽤 자주 나타났다. 모세는 애굽 홍해를 가를 때(출 14:13-31을 보라)와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릴 때 이 은사를 사용하였다.

예수님은 물고기 몇 마리와 떡 몇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사용하셨다(마 14:15-21을 보라).

바울이 실루기아 섬에서 사역을 방해하는 엘루마라 하는 마술사를 얼마 동안 맹인이 되게 한 것도 기적을 행하는 믿음의 예이다(행 13:4-12을 보라)

계시의 은사(The Revelation Gifts)

1).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종종 과거 또는 현재의 특정 정보에 대한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전이로 정의된다. 모든 지식을 소유하신 하나님은 어떤 때에 사람에게 지식의 작은 부분을 나누어 주시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그것을 지식의 말씀이라고 부를 것이다. 한 단어가 문장의 단편적인 부분인 것 처럼, 지식의 말씀도 하나님의 지식의 단편적인 부분일 것이다.

지혜의 말씀은 지식의 말씀과 매우 비슷하지만, 그것은 종종 미래의 사건에 대한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전이로 정의된다. 지혜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미래에 관한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다소 추측 적이다.

지식의 말씀에 관한 구약 성경의 예를 살펴보자. 엘리사가 시리아인 나병환자 나아만을 치유한 후, 나아만은 그를 치유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엘리사에게 큰 금액의 돈을 주었다. 엘리사는 그 예물을 거절하였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은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샀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개인적인 재물을 얻을 기회를 엿보았고 비밀리에 나아만의 의도된 돈을 받았다. 게하시가 자신의 거짓 획득은 숨겨둔 후, 엘리사 앞에 나타나며 우리는 다음 구절을 읽게 된다.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왕하 5:25하-26상).

게하시의 추한 행위를 다 아시는 하나님은 그 사실을 엘리사에게 초자연적으로 드러내셨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엘리사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가지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그가 항상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경우였다면, 게하시가 자신의 죄를 은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에게 그런 일들을 계시하실 때에만 알 수 있었다. 그 은사는 성령님의 의지대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지식의 말씀으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자에게 그녀가 다섯 남편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요 4:17-18을 보라).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판 돈 전부를 교회에 바쳤다고 회중들에게 거짓말한 것을 알았던 것도 이 은사로 쓰임 받은 것이다(행 5:1-11을 보라).

지혜의 말씀의 은사에 관해서, 우리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이 은사가 자주 나타남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미래의 사건을 예측할 때마다 지혜의 말씀으로 한 것이다. 예수님도 꽤 자주 이 은사를 받으셨다. 그분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그분의 십자가 처형과 그분이 재림하시기 전에 이 땅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언하셨다(눅 17:22-36, 21:6-28을 보라).

사도 요한은 환난의 심판을 계시받을 때 이 은사로 쓰임받았다. 그는 요한 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2).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는 종종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거나 분별하는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정의된다.

신자가 눈과 마음을 통해 본 비전도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은사는 바울이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경험한 것처럼(행 18:9-10; 22:17-21; 23:11을 보라) 신자로 하여금 천사, 마귀,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엘리사와 그의 사환이 아람 군대에 쫓겨 도단에 갇혀있을 때, 그의 사환이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음을 보고 근심에 잠겼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6-17).

당신은 천사가 영적인 말과 영적인 병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언젠가는 천국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사의 사환은 그것을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 은사를 통하여, 신자는 사람을 억압하는 악령을 분별할 수 있으며 그 영이 어떤 종류의 영인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 은사는 영적인 영역의 일들을 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영적인 영역을 분별할 수도 있게 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영적 영역에서 무언가를 듣는 것을 포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은사는 “분별의 은사”가 아니다. 이 은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은사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판의 은사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은사”이다. 사실은, 구원받기 전에 당신은 그 “은사”를 가졌을 수 있지만, 구원받은 지금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건져내고 싶어하신다.

말함의 은사(The Utterance Gifts)

1). 예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는 말하는 자가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말하는 갑작스럽고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로 자주 시작한다.

이 은사는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영감을 받은 설교와 가르침은 성령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기에 예언의 요소를 포함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예언은 아니다. 많은 경우, 기름 부음을 받은 설교자나 교사는 그들이 계획하지 않은 말을 갑작스러운 영감에 의해 말하게 되는데 그것은 예언이 아니다. 비록 나는 그것을 예언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예언의 은사는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고전 14:3).

따라서 예언의 은사 그 자체에는 어떠한 계시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그것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과 달리 과거, 현재, 또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계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성령의 은사는 서로 함께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은 예언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가 집회에서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는 것을 들었을 때, 예언을 들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언의 은사를 통해 지혜의 말씀을 들었다. 예언의 은사는 마치 사람이 “너희는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라는 성경 속의 권면을 읽는 것처럼 들려진다.

일부 사람들은 신약 성경의 예언은 “부정적인 것”은 무엇이든지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여야 한다는 특성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하시려는 말씀을 제한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기들이 책망을 받아 마땅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것만 말씀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이는 것이다. 책망은 확실히 덕을 세우고 권면하는 범주에 속한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 속에 확실히 책망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책망들을 버려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 각종 방언과 통역의 은사: 각종 방언의 은사란 갑자기 초자연적으로 자신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은사에는 일반적으로 통역의 은사가 동반되는데 통역의 은사란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한 것을 갑자기 통역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한다.

이 은사는 방언의 번역이 아닌 방언의 해석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방언의 메시지를 단어마다 번역하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 때문에 짧은 “방언의 메시지”와 긴 통역이 있을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역의 은사는 예언과 매우 비슷하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도 계시를 포함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4장 5절에 따라 방언에 통역의 은사를 더하면 예언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내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에는 능력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가르침이 없으며 계시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도 매우 적으나 말함의 은사에 대한 가르침은 매우 많다. 왜냐하면, 말함의 은사에 있어서 고린도 교회에 약간의 혼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 문제에 대해서 거의 고린도전서14장 전부를 할애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언의 적절한 사용에 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 세례에 대한 장에서 배운 것처럼, 성령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원하면 언제든지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교회 예배 중에 방언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질서가 없었다.

방언의 다른 용도(The Different Uses of Other Tongues)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언에 대한 공용 사용과 개인 사용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록 성령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가 언제든지 방언으로 말할 수는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중적인 방언의 은사로 사용하시리라는 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방언의 기본 용도는 각 신자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이다. 그러나 고린도인들은 함께 모여 통역이 없이 동시에 방언을 말하였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통하여 도움을 받거나 덕을 세우지 못했다(고전 14:6-12, 16-19, 23, 26-28을 보라).

방언의 공용 사용과 개인 사용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개인 사용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공용 사용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두 가지 사용에 대해 모두 언급하고 있다.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고전 14:2, 14을 보라). 그러나 누군가가 각종 방언의 은사를 갑자기 받았을 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교회를 향한 메시지이며 일단 통역이 주어지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전 14:5을 보라).

성경에 따르면, 우리가 원하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고전 14:15을 보라), 각종 방언의 은사는 성령님의 뜻대로 주신다(고전 12:11을 보라).

각종 방언의 은사에는 일반적으로 통역의 은사가 동반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는 방언 기도는 일반적으로 통역되지 않는다. 바울은 그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는 그의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14:14).

한 개인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는 단지 만이 덕을 세우게 된다(고전 14:4을 보라). 그러나 각종 방언의 은사가 통역과 동반하여 나타날 때에는 전체 회중이 덕을 세우게 된다(고전 14:4후-5을 보라).

모든 신자는 주님과의 일상적인 교제의 일환으로 매일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 방언기도에 대한 놀라운 것들 중 하나는 그것이 당신이 마음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당신의 마음이 직장이나 다른 것들에 점유되어 있을 때에도 방언으로 기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강조 추가)라고 말했다. 그가 방언을 말하는데 보낸 시간이 전체 고린도 교회를 능가했음이 틀림없다!

바울은 또한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종종 “주님을 축복하게 된다”(고전 14:16-17)라고 썼다. 내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이 내가 “기도하는 언어”를 이해했던 적이 세 번 있었다. 나는 세 번 모두 일본어로 말하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일본어로 주님께 “당신은 아주 좋습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한 번은 “매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번은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놀랍지 않은가? 나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적어도 세 번이나 일본어로 “주님을 축복하였다!”

방언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Paul’s Instructions for Speaking in Tongues)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어떠한 모임에서든지 대중적으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된 사람의 인수는 두 명 또는 세 명에 국한되었으며 방언을 할 때 모두 한 번에 말하지 말고 차례를 따라 기다렸다가 말해야 한다(고전 14:27을 보라).

바울은 단지 세 “방언의 메시지”만 허용된다고 의미한 것이 아니라 세 명 이상의 사람이 특정 예배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음을 의미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각종 방언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는 사람이 세 명 이상이라면, 그 중의 누구라도 성령님께 순복하여 성령님이 교회에 나타내고자 하는 “방언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울의 가르침은 실제로 특정 모임에 나타날 수 있는 방언의 메시지를 제한함으로써 성령님을 제한하게 된다. 만일 성령님이 한 모임에서 세 명 이상에게 각종 방언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다면, 바울이 이런 가르침을 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방언의 통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회중 중에 아마도 한 명 이상은 성령님께 순복하고 “방언의 메시지”를 통역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통역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기 때문에 “통역하는 자”로 간주된다(고전 14:28을 보라).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이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고전 14:27)라고 가르칠 때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단지 한 사람만이 모든 방언의 메시지를 통역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는 같은 메시지에 대해 “경쟁적인 통역”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만일 한 통역하는 자가 하나의 방언의 메시지를 해석했으면, 다른 통역하는 자는 자기가 더 나은 통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같은 메시지를 통역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교회 모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적절하고 질서 있게” 진행되어야 하며 동시적이고 혼란스럽고, 심지어 경쟁적인 발언으로 뒤죽박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신자들은 바울이 쓴 것처럼, 그들의 모임에 함께 있을 수 있는 모든 불신자들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3).

그것은 정확히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이었다 – 사람마다 동시에 방언을 하였으며 거기에는 종종 어떠한 통역도 없었다.

계시의 은사에 관한 몇 가지 지침(Some Instruction Concerning Revelation Gifts)

바울은 선지자를 통해 나타나는 “계시의 은사”에 관해 몇 가지 지침을 주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29-33).

고린도 교회의 지체 중에 통역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는 “통역하는 자”들이 분명히 있듯이, 거기에는 예언과 계시의 은사로 자주 쓰임 받는 “선지자”로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구약 성경의 선지자거나 신약 성경의 아가보(행 11:28; 21:10을 보라)와 같은 선지자와 같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사역은 지역 교회의 지체들에게 국한되었을 것이다.

비록 교회 모임에 이 같은 선지자가 세 명 이상 있을 수 있지만, 바울은 예언 사역을 하는 인수를 “둘이나 셋”으로 제한하였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성령님이 모임에서 성령의 은사를 주실 때, 한 명 이상의 사람이 순복함으로써 그런 은사들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만약 그렇다면, 바울의 지침은 어떤 신자들로 하여금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얼마나 많은 선지자가 말할 수 있는지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만일 모임에 세 명 이상의 선지자가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비록 말하는 것으로부터 억제당했지만, 말해지는 내용을 분별함으로 도울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그들이 성령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내며 어쩌면 그들이 다른 선지자를 통해 나타나는 예언의 은사에 쓰임을 받도록 성령님께 순복했음을 암시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성숙한 신자가 할 수 있듯이, 단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이미 보여주신 계시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예언과 계시를 분별할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선지자들이 차례대로 모두 예언할 수 있으며(고전 14:31을 보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고전 14:32)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각 선지자가 성령님으로부터 회중들과 함께 나눠야 할 예언과 계시를 받았을 때에도 다른 선지자를 방해하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성령님이 모임 중에 있는 여러 선지자에게 동시에 은사를 주실 수 있으며 각 선지자가 이런 계시거나 예언을 지체들과 나눌 때에는 자신을 제어할 능력이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말하는 은사가 어느 신자를 통해 나타나든지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다. 만일 한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방언이나 예언의 메시지를 받았다면, 그는 모임에서 말하기 적절한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예언이나 가르침을 방해하면서 자신의 예언을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울이 “너희는 다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31)라고 주장할 때, 그는 예언을 받은 선지자의 맥락에서 말한 것임을 기억하라. 일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문맥을 무시하고 바울의 말이 모든 신자는 신자들의 모든 모임에서 다 예언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예언의 은사는 성령님의 뜻을 따라 주어진다.

오늘날, 교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도우심과 능력과 임재와 은사가 필요하다.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우리의 사모하는 정도가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과 연관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 삼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께 쓰임 받기를 사모하며, 진심으로 영적인 은사를 사모할 것이며 그들의 제자들도 똑같이 하라고 가르칠 것이다.

Impano z’Umwuka (The Gifts of the Spirit)

Igice Cya Cumi Na Karindwi (Chapter Seventeen)

Bibiliya yuzuye ahantu henshi usanga abagabo baragiye bahabwa ako kanya n’Umwuka Wera ubushobozi bw’indengakamere. Mu Isezerano Rishya, ubwo bushobozi bw’indengakamere bwitwa “impano z’Umwuka.” Ni impano mu buryo bw’uko ntawe uzikorera. Nyamara ntitugomba kwibagirwa yuko Imana ishyira hejuru umuntu ishobora kugirira icyizere. Yesu yaravuze ati, “Ukiranutse ku cyoroheje cyane, aba akiranutse no ku gikomeye. Kandi ukiraniwe ku cyoroheje cyane, aba akiraniwe no ku gikomeye” (Luka 16:10). Nuko rero dushobora kwizera ko impano z’Umwuka zishobora cyane cyane guhabwa abagaragaje ubwizerwa kwabo imbere y’Imana. Kwiyegurira rwose Umwuka Wera no kumugandukira ni ngombwa cyane, kuko Imana ishobora cyane gukoresha abantu bameze batyo ibintu by’indengakamere. Ku rundi ruhande, Imana yigeze gukoresha indogobe irahanura, ubwo rero ishobora gukoresha uwo ari we wese ishatse. Itegereje ko dutungana rwose ngo ibone kudukoresha, nta n’umwe muri twe yakoresha!

Mu Isezerano Rishya, urutonde rw’impano z’Umwuka ruri mu 1 Abakorinto 12, kandi zose hamwe ni icyenda:

Umwe aheshwa ijambo ry’ubwenge n’Umwuka, undi agaheshwa n’uwo Mwuka ijambo ryo kumenya, undi agaheshwa n’uwo Mwuka kwizera, undi agaheshwa n’uwo Mwuka impano yo gukiza indwara. Undi agahabwa gukora ibitangaza, undi agahabwa guhanura, undi agahabwa kurobanura imyuka, undi agahabwa kuvuga indimi nyinshi, undi agahabwa gusobanura indimi (1 Kor. 12:8-10).

Kumenya gusobanura impano ya buri muntu si byo by’ingenzi cyane kugira ngo Imana ikoreshe umuntu mu mpano z’Umwuka. Abahanuzi bo mu Isezerano Rya Kera, abatambyi, abami, ndetse n’abakozi b’Imana bo mu ntangiriro z’Itorero ryo mu Isezerano Rishya bose bakoreraga mu mpano z’Umwuka nyamara batazi kuzishyira mu byiciro byazo cyangwa kuzisobanura neza. Ariko kuko impano z’Umwuka twazishyiriwe mu byiciro mu Isezerano Rishya, kigomba kuba ari ikintu Imana ishaka ko dusobanukirwa. Koko Pawulo yaranditse ati, “Bene Data, ibyerekeye impano z’Umwuka sinshaka ko mutabimenya (1 Kor. 12:1).

Za mpano Icyenda Mu Byiciro

(The Nine Gifts Categorized)

Izo mpano icyenda z’Umwuka zashyizwe mu byiciro bitatu muri iki gihe: (1) impano zo kuvuga, ari zo: kuvuga indimi, gusobanura indimi, no guhanura; (2) impano zo guhishurirwa, ari zo: ijambo ry’ubwenge, ijambo ryo kumenya no kurobanura imyuka; n’ (3) impano z’imbaraga, ari zo: gukora ibitangaza, kwizera kudasanzwe, n’impano zo gukiza indwara. Eshatu muri izi mpano zifite icyo zivuga; eshatu hari icyo zihishura; kandi eshatu hari icyo zikora. Izi mpano zose zarakoraga mu Isezerano Rya Kera, uretse kuvuga mu ndimi no gusobanura indimi. Izo uko ari ebyiri ziri mu Isezerano Rishya gusa.

Isezerano Rishya nta mabwiriza ritanga y’uburyo bwo gukoresha “impano z’imbaraga” kandi rivuga gato cyane ku buryo bwo gukoresha “impano zo guhishurirwa.” Nyamara Pawulo atanga amabwirizwa ahagije ku “mpano zo kuvuga,” kandi wenda hari impamvu z’uburyo bubiri.

Iya mbere, impano zo kuvuga ni zo zikunze kugaragara mu materaniro y’Itorero, mu gihe impano zo guhishurirwa zidakunze kuboneka cyane, naho impano z’imbaraga zo ni zo zigaragara gake cyane kurusha izindi zose. Ubwo rero amabwirizwa twakenera cyane ni ayerekeye impano zishobora kugaragara cyane kenshi mu materaniro.

Iya kabiri, impano zo kuvuga zisa nk’aho zisaba ko umuntu abigiramo uruhare runini, kubera iyo mpamvu rero, zikaba ari zo mpano zishobora kuba zakoreshwa nabi kurusha izindi. Biroroshye cyane kongeraho akantu gato ku buhanuzi ukaba urabwishe kurusha uko wagira icyo wangiza ku mpano yo gukiza indwara.

Uko Umwuka Ashaka

(As the Spirit Wills)

Ni iby’ingenzi cyane kumenya ko impano z’Umwuka zitangwa uko Umwuka ashaka atari uko umuntu n’umwe ashaka. Bibiliya irabisobanura neza:

Ariko ibyo byose uwo Mwuka umwe ni we ubikorera muri bo, agabira umuntu wese uko ashaka (1 Kor. 12:11).

Imana ifatanije nab o guhamya, ihamirisha ibimenyetso n’ibitangaza n’imirimo ikomeye y’uburyo bwinshi, n’impano z’Umwuka Wera zagabwe nk’uko yabishatse (Heb. 2:4).

Umuntu ashobora gukoreshwa kenshi mu mpano runaka, ariko nta muntu n’umwe ufite impano n’imwe atunze. Kuko gusa hari igihe wasigirwa amavuta gukora igitangaza ntabwo bivuze ko ushobora gukora igitangaza igihe icyo ari cyo cyose ushakiye; nta n’ubwo wabishingiraho ngo wemeze ko uzongersa gukoreshwa igitangaza.

Turi bwige mu buryo bugufi, turebe ingero nkeya zo muri Bibiliya kuri buri mpano. Ariko kandi ukomeze kugumana mu bitekerezo ko Imana ifite inzira igihumbi ishobora kugaragarizamo ubuntu bwayo n’imbaraga zayo, bityo rero ntibishoboka ko twavuga neza neza uburyo buri mpano ikora buri gihe. Ikindi kandi, nta busobanuro buri muri Bibiliya kuri izo mpano icyenda–icyo dufite gusa ni icyo buri mpano ikora. Nuko rero dushobora kureba gusa ku ngero ziri muri Bibiliya tukagerageza kureba icyiciro buri mpano irimo, amaherezo tukazisobanura dushingiye ku kuntu zigenda zitandukanye. Bitewe n’uko hari uburyo bwinshi Umwuka Wera ashobora kwigaragarizamo mu mpano z’indengakamere, ntibyaba birimo ubwenge tugerageje guhagarara cyane ku busobanuro bwacu. Impano zimwe zishobora mu byukuri no kuba ari impano nyinshi zikomatanyirije hamwe zigakora nk’impano imwe. Kuri ibi Pawulo yaranditse ati:

Icyakora hariho impano z’uburyo bwinshi, ariko Umwuka ni umwe. Kandi hariho uburyo bwinshi bwo kugabura iby’Imana, ariko Umwami ni umwe. Hariho n’uburyo bwinshi bwo gukora, ariko Imana ikorera byose muri bose ni imwe, umuntu wese agahabwa ikimwerekanaho Umwuka kugira ngo bose bafashwe (1 Kor. 12:4-7).

Impano z’Imbaraga

(The Power Gifts)

1) Impano zo gukiza indwara: Impano zo gukiza indwara birumvikana ko zifite aho zihuriye no gukira kw’abantu barwaye. Zikunze gusobanurwa nk’ubushobozi ndengakamere bwo gukiza ako kanya mu buryo bw’umubiri umuntu urwaye, kandi simbona impamvu umuntu yabihakanya. Mu gice turangije twabonye urugero rumwe rw’impano yo gukiza indwara yakoreye muri Yesu igihe yakizaga wa mugabo w’ikirema ku kidendezi cy’i Betesida (reba Yohana 5:2-17).

Imana yakoresheje Elisa gukiza umubembe Nāmani w’Umusiriya, wasengaga ikigirwamana (reba 2 Abami 5:1-14). Nk’uko twabibonye twiga amagambo ya Yesu muri Luka 4:27 avuga ku gukira kwa Nāmani, Elisa ntiyashoboraga gukiza umubembe wese igihe ashakiye cyose. Ako kanya yayobowe mu buryo bw’igitangaza n’Umwuka Wera kubwira Nāmani kwibira muri Yorodani incuro ndwi, kandi igihe Nāmani yaje kugeraho akumvira, yakize ibibembe bye.

Imana yakoresheje Petero mu gukiza cya kirema cyo ku irembo ryitwa Ryiza biciye mu mpano yo gukiza indwara (Ibyak. 3:1-10). Ntihabayeho gukira kw’ikirema gusa, ahubwo icyo gitangaza cyanakururiye benshi kuza kumva ubutumwa bwiza bwavaga mu kanwa ka Petero, kandi abantu ibihumbi bitanu biyongereye ku itorero uwo munsi. Impano zo gukiza indwara akenshi zigira umumaro w’uburyo bubiri, zikiza abarwayi kandi zigakururira abantu badakijijwe kuri Kristo.

Igihe Petero yagezaga ubutumwa bwe ku bantu bari bateraniye aho uwo munsi, yaravuze ati:

Yemwe bagabo ba Isirayeli, ni iki gitumye mutangarira ibi? Mudutumbirira iki nk’aho ari imbaraga zacu cyangwa kūbaha Imana kwacu, biduhaye kumugendesha? (Ibyak. 3:12).

Petero yemeye ko atari ukubera imbaraga runaka yari afite muri we, cyangwa se kubera gukiranuka kudasanzwe, byatumye Imana imukoresha mu gukiza ikirema. Wibuke ko amezi abiri gusa mbere y’icyo gitangaza, Petero yari yihakanyeYesu avuga ko atigeze amumenya. Icyo kintu gusa cyo kubona Imana yarakoresheje Petero mu buryo bw’ibitangaza mu mpapuro za mbere z’igitabo cy’Ibyakozwe n’Intumwa cyari gikwiye kuzamura cyane icyizere cyacu ko natwe Imana yadukoresha uko ishaka.

Igihe Petero yageragezaga gusobanura uko uwo mugabo yakize, birashoboka cyane ko atashyize uko gukira mu cyiciro cy “impano yo gukiza indwara.” Icyo Petero yari azi gusa ni uko we na Yohana bagendanaga n’umuntu w’ikirema hanyuma ako kanya Petero akumva yuzuye kwizera ko uwo muntu akira. Nuko ategeka uwo muntu kugenda mu izina rya Yesu, amufata mu kiganza cy’iburyo aramuhagurutsa. Wa muntu w’ikirema atangira “kugenda asimbuka ahimbaza Imana.” Petero yabisobanuye atya:

Kandi uyu, uwo mureba kandi muzi, kuko yizeye izina ry’Uwo ni ryo rimuhaye imbaraga, kandi kwizera ahawe n’Uwo ni ko kumukirije rwose imbere yanyu mwese (Ibyak. 3:16).

Bisaba kwizera kudasanzwe kugira ngo umuntu afate umuntu w’ikirema ukuboko amuhagurutse hanyuma yiringire ko agiye kugenda! Hamwe n’iyi mpano yihariye yo gukiza indwara, hagomba kuba hari no kwizera kwamumanukiye kugatuma bishoboka.

Bamwe bavuga ko impamvu iyi mpano ivugwa mu bwinshi (bavuga, “impano zo” gukiza indwara) ari uko hari impano zitandukanye zo gukiza indwara zitandukanye. Abakunze kujya bakoreshwa cyane mu mpano zo gukiza indwara bagezaho bakabona ko hari indwara runaka zihariye bakiza cyane kurusha izindi. Urugero, umuvugabutumwa Filipo yagaragaraga cyane nk’ufite impano yihariye mu gukiza abamugaye n’abanyunyutse (Ibyak. 8:7). Urugero kandi hari abavugabutumwa bamwe bo mu kinyejana gishize, bari ku rwego rwo hejuru cyane mu gukiza abafite ubumuga bwo kutabona, cyangwa kutumva cyangwa uburwayi bw’umutima, n’ibindi bitewe n’impano bagiye bafite zikiza indwara runaka cyane kurusha izindi ndwara.

2) Impano yo kwizera no gukora ibitangaza: Impano yo kwizera n’impano yo gukora ibitangaza zigaragara nk’izisa. Kuri izo mpano zombi, umuntu amavuta amanukiye ahabwa ako kanya kwizera ko gukora ibidashoboka. Itandukaniro hagati y’izo mpano zombi akenshi risobanurwa gutya: Ku mpano yo kwizera, umanukiwe n’amavuta ahabwa kwizera ko kwakira igitangaza ku bwe, naho impano yo gukora ibitangaza, umuntu ahabwa kwizera ko gukorera undi muntu igitangaza.

Impano yo kwizera rimwe na rimwe bayita “kwizera kudasanzwe” kuko umuntu amanukirwa ako kanya no kwizera kurenze kwizera gusanzwe. Kwizera gusanzwe kuzanwa no kumva isezerano ry’Imana, mu gihe kwizera kudasanzwe ko kuzanwa no gukorwaho ako kanya n’Umwuka Wera. Abagize ibyo bihe byo kugira impano yo kwizera kudasanzwe bavuga ko bagiye kumva bakumva ibintu babonaga ko bidashoboka bibaye ibishoboka, kandi koko bakumva bidashoboka ko babishidikanya. Ni cyo kimwe no ku mpano yo gukora ibitangaza.

Inkuru ya Daniyeli na bagenzi be batatu, Shadaraki, Meshaki na Abedinego itwereka urugero rwiza cyane rw’ukuntu “kwizera kudasanzwe” gutuma bidashoboka gushidikanya. Igihe babajugunyaga mu itanura ry’umuriro kuko banze kunamira ikigirwamana cy’umwami, bose bahawe impano yo kwizera kudasanzwe. Byagombaga kwizera kurenze ugusanzwe kugira ngo umuntu atabwe mu birimi by’umuriro bikaze abeho! Reka turebe kwizera abo basore batatu bagaragaje imbere y’umwami:

Saduraka na Meshaki na Abedenego basubiza umwami bati, “Nebukadinezari, nta mpamvu ituma tugusubiza iryo jambo. Niba ari ibyo [niba ugiye kutujugunya mu itanura], Imana yacu dukorera ibasha kudukiza mu itanura ry’umuriro ugurumana, kandi izadukiza ukuboko kwawe nyagasani. Ariko niba atari ibyo [nutatujugunya mu itanura ry’umuriro], nyagasani umenye ko tutari bukorere imana zawe, habe no kuramya icyo gishushanyo cy’izahabu wakoze” (Dan. 3:16-18).

Urabona ko impano yakoraga na mbere y’uko batabwa mu muriro. Nta gushidikanya na guto kwarangwaga mu bitekerezo byabo ko Imana iri bubakize.

Eliya yakoreraga mu mpano yo kwizera kudasanzwe igihe yagaburirwaga n’ibikōna buri munsi muri ya cya gihe cy’amapfa y’imyaka itatu n’igice yo ku ngoma y’umwami mubi Ahabu (reba 2 Abami 17:1-6). Bisaba kwizera kurenze ugusanzwe kugira ngo wizere ko ibisiga bizajya bikuzanira ibyo kurya ku manywa na nijoro. Nubwo nta hantu na hamwe Imana yigeze idusezeranira mu Ijambo ryayo ko ibikōna bizatuzanira ibiryo buri munsi, dushobora gukoresha kwizera gusanzwe tukiringira ko Imana izatumara ubukene bwacu bwa buri munsi–kuko iryo ni isezerano (reba Mat. 6:25-34).

Gukora ibitangaza cyari ikintu gihoraho mu murimo wa Mose. Yakoreye muri iyo mpano igihe yatandukanyaga Inyanja Itukura (reba Kuva 14:13-31) n’igihe ibyago bitandukanye byateraga Egiputa.

Yesu yakoreye mu mpano yo gukora ibitangaza igihe yagaburiraga abantu 5,000 akoresheje udufi duke n’udutsima duke (reba Mat 14:15-21).

Igihe Pawulo yatumaga Eluma umukonikoni amara igihe ari impumyi kubera ko yaberaga intambamyi umurimo wa Pawulo mu kirwa cya Kupuro, urwo rwaba urugero rwo gukora ibitangaza (reba Ibyak 13:4-12).

Impano zo guhishurirwa

(The Revelation Gifts)

1). Ijambo ryo kumenya n’ijambo ry’ubwenge: Impano y’ijambo ryo kumenya akenshi isobanurwa nko kumanukirwa ako kanya mu buryo ndengakamere n’amakuru avuga ibyo igihe cyahise cyangwa ikiriho. Imana, ifite kumenya kose, rimwe na rimwe itangaho agace gato k’ubwo bumenyi, ari cyo gituma wenda byitwa ijambo ryo kumenya. Ijambo ni agace k’interuro, nuko rero ijambo ryo kumenya rishobora kuba ari agace ko kumenya kw’Imana.

Ijambo ry’ubwenge risa cyane n’ijambo ryo kumenya, ariko akenshi risobanurwa ko ari ukumanukirwa ako kanya no kumenya ibyo mu bihe bizaza mu buryo ndengakamere. Iryo jambo ubwenge ubusanzwe ririmo ikintu cyo mu gihe kizaza. Na none, ubu busobanuro ntibutomoye neza.

Reka turebe urugero rumwe rwo mu Isezerano Rya Kera rw’ijambo ryo kumenya. Elisa amaze gukiza Nāmani Umusiriya ibibembe, Nāmani yashatse guha Elisa amafaranga menshi cyane ashima ko akize. Elisa yanze kwakira iyo mpano kugira ngo hatagira ukeka ko gukira kwa Nāmani kwaguzwe amafaranga aho kuba ubuntu bw’Imana. Ariko Gehazi umugaragu wa Elisa we yabonye ko ari amahirwe abonetse yo kwigwiriza ubutunzi, nuko mu buryo bw’ibanga yakira igice cy’ubutunzi Nāmani yashakaga gutangaho ikiguzi. Gehazi amaze guhisha ifeza yabonye mu buryo bw’uburiganya, aza imbere ya Elisa. Hanyuma dusoma ngo,

Elisa aramubaza ati, “Uraturuka he Gehazi?” Undi ati, “Umugaragu wawe ntaho nagiye.”Aramubwira ati, “Umutimwa wanjye ntiwajyanye nawe, ubwo wa mugabo yahindukiraga akava ku igare rye akaza kugusanganira?” (2 Abami 5:25b-26a).

Imana, yo nyirukumenya neza amabi yose Gehazi yakoze, yabihishuriye Elisa mu buryo bw’igitangaza. Iyi nkuru ariko, yerekana neza ko Elisa atari “atunze” impano y’ijambo ryo kumenya; ni ukuvuga ngo ntiyashoboraga kumenya buri kintu cyose igihe icyo ari cyo cyose. Iyo biza kuba bimeze bityo, Gehazi ntaba yarigeze atekereza ko ashobora guhisha icyaha yakoze. Elisa yamenyaga gusa ibintu mu buryo bw’igitangaza igihe Imana yabimuhishuriraga rimwe na rimwe. Impano yakoraga uko Umwuka ashaka.

Yesu yakoreraga mu mpano y’ijambo ryo kumenya igihe yabwiraga wa musamariyakazi ku iriba ko yagize abagabo batanu (reba Yohana 4:17-18).

Petero yakoreshwaga muri iyi mpano igihe yamenyaga mu buryo bw’igitangaza ko barimo babeshya ngo batanze mu itorero ibyo bagurishije mu isambu yabo byose (reba Ibyak. 5:1-11).

Naho ku by’ijambo ry’ubwenge, tubona cyane kenshi iyi mpano mu bahanuzi bose bo mu Isezerano Rya Kera. Igihe cyose bavugaga ibizaba, ijambo ry’ubwenge ryabaga ririmo rikora. Yesu yahabwaga gukorera muri iyi mpano kenshi na we. Yavuze uko Yerusalemu izasenywa, avuga uko azabambwa ku musaraba, avuga n’ibintu bizaba ku isi mbere y’uko agaruka (reba Luke 17:22-36, 21:6-28).

Intumwa Yohana na we yakoreshejwe muri iyi mpano igihe yahishurirwaga ibihano byo mu gihe cy’Amakuba akomeye. Ibyo byose yabitwandikiye mu gitabo cy’Ibyahishuwe.

2). Impano yo kurobanura imyuka: Impano yo kurobanura imyuka akenshi ikunze gusobanurwa nk’ubushobozi ndengakamere bwo kubona cyangwa ibirimo biraba mu isi y’umwuka.

Iyerekwa, mu buryo bw’amaso cyangwa mu bitekerezo by’uwizera, rishobora gushyirwa mu rwego rwo kurobanura imyuka. Iyi mpano ishobora gutuma uwizera abona abamarayika, abadayimoni, cyangwa na Yesu ubwe, nk’uko byabaye kuri Pawulo kenshi (reba Ibyak. 18:9-10; 22:17-21; 23:11).

Igihe Elisa n’umugaragu we bari bakurikiwe n’ingabo z’Abasiriya, bakisanga bagotewe i Dotani. Icyo gihe, umugaragu wa Elisa yarebeye hejuru y’igihome, abonye ingabo nyinshi z’Abasiriya zirema inteko, agira ubwoba:

Aramusubiza [Elisa] ati, “Witinya kuko abo turi kumwe ari benshi kuruta abari kumwe na bo.” Nuko Elisa arasenga ati, “Uwiteka ndakwinginze, muhumure amaso arebe.” Nuko Uwiteka ahumura amaso y’uwo musore arareba, abona umusozi wuzuye amafarashi n’amagare by’umuriro bigose Elisa” (2 Abami 6:16-17).

Wari uzi ko abamarayika bagendera ku mafarashi n’amagare by’umwuka? Umunsi umwe uzabibona mu ijuru, ariko Elisa n’umugaragu we bahawe ubushobozi bwo kubibona bakiri ku isi.

Muri iyi mpano uwizera ashobora umwuka mubi uteje umuntu ibibazo kandi akagira n’ubushobozi bwo kumenya neza ubwoko bw’uwo mwuka ubwo ari bwo.

Iyi mpano ishobora kuba atari iyo kubona gusa ibyo mu mwuka ahubwo ifasha no gusobanukirwa ibindi bintu ibyo ari byo byose byo mu mwuka. Urugero nko kumva ikintu cyo mu isi y’umwuka, nko kumva ijwi ry’Imana ubwaryo.

Icya nyuma, iyi mpano si “impano yo gushishoza”, kumenya kugenzura ibintu no gusobanukirwa, nk’uko bamwe bibwira ko ari ko “impano yo kurobanura” iri. Abantu bivugaho ko bafite iyo mpano rimwe na rimwe bibwira ko bashobora kumenya ibitekerezo by’abandi bantu n’impamvu zibatera gukora ibyo bakora, ariko ahubwo urebye umuntu yavuga ko imano yabo ari “impano yo kunegura abandi no kubacira imanza.” Ukuri ni uko ushobora kuba wari ufite iyo “mpano” utarakizwa, ariko ubu noneho ubu aho umariye gukizwa, Imana irashaka kuyigukiza burundu!

Impano zo Kuvuga

(The Utterance Gifts)

1). Impano y’ubuhanuzi: Impano y’ubuhanuzi ni ubushobozi bumanukira umuntu ako kanya mu buryo ndengakamere agashobora kuvuga ahumekewe n’Imana, akavuga mu rurimi rwe asanzwe avuga. Iteka ubuhanuzi bushobora gutangizwa n’amagambo ngo, “Uku ni ko Uwiteka avuga.”

Iyi si impano yo kwigisha cyangwa kubwiriza. Kubwiriza cyangwa kwigisha birimo guhumekerwa n’Imana biba birimo ubuhanuzi kuko bib bisizwe amavuta n’Umwuka, ariko ntibiba ari ubuhanuzi nk’uko buri mu miterere yabwo y’umwimerere. Kenshi na kenshi umuvugabutumwa cyangwa umwigisha ashobora kugira atya agahumekerwa n’Imana akavuga ibintu atari yateguye kuvuga, ariko mu byukuri ubwo si ubuhanuzi, nubwo ntekereza ko ibyo avuze biba bihanura.

Impano y’ubuhanuzi nyirizina umurimo wayo ni ukungura, guhugura no guhumuriza:

Ariko uhanura we abwira abantu ibyo kubungura, n’ibyo kubahugura n’ibyo kubahumuriza (1 Kor. 14:3).

Nuko rero impano y’ubuhanuzi yo, ubwayo, nta hishurirwa igira. Ni ukuvuga ko yo itagira icyo ihishura ku gihe cyahise, ikiriho cyangwa ikizaza, nk’uko ijambo ry’ubwenge n’ijambo ryo kumenya bikora. Nyamara nk’uko navuze mbere, impano z’umwuka zishobora gukorana icyarimwe, bityo rero ijambo ry’ubwenge cyangwa iryo kumenya ashobora gukora mu buryo bw’ubuhanuzi.

Iyo twumva umuntu atanga ubuhanuzi mu materaniro akavuga ibizaba, mu byukuri ntituba twumvise ubuhanuzi gusa; twumvise ahubwo ijambo ry’ubwenge ritanzwe mu buryo bw’impano y’ubuhanuzi. Impano y’ubuhanuzi ubwayo uyumvise wagira ngo ni umuntu usoma muri Bibiliya amagambo yo guhugura nk’aya ngo “Mukomerere mu Mwami no mu mbaraga ze z’ubushobozi bwe bwinshi” cyangwa ngo, “Sinzabasiga, sinzabahāna.”

Hari abemera ko mu Isezerano Rishya nta buhanuzi buvuga “ibintu bibi”bukwiye kubaho, ngo naho ubundi ntibwaba buhuye n’ ibyo “kungura, guhugura, no guhumuriza.” Ariko ibyo si byo. Gushyiraho imipaka y’ibyo Imana igomba kubwira abantu bayo, hakemerwa gusa ibyo bita “byiza” no mu gihe bari bakeneye gucyahwa, ni ukwishyira hejuru ugashaka gusumba Imana. Gucyaha bishobora rwose kubarirwa mu kiciro cyo kungura no guhugura. Nabonye ko mu butumwa Umwami yoherereje amatorero arindwi yo muri Asiya, buri mu gitabo cya Yohana cy’Ibyahishuwe, harimo rwose gucyaha. Tubikureho se? Si ko mbyumva.

2). Impano yo kuvuga indimi nyinshi n’iyo gusobanura indimi: Impano yo kuvuga indimi nyinshi ni ubushobozi ndengakamere umuntu ahabwa ako kanya bwo kuvuga mu rurimi rutazwi na nyirukuruvuga. Ubusanzwe iyi mpano igendana n’impano yo gusobanura indimi, ibyo ni ubushobozi ndengakamere umuntu ahabwa ako kanya bwo gusobanura ibyavuzwe mu rurimi rutamenyekana.

Iyi mpano yitwa gusobanura indimi bitavuze gusobanura nk’uvana mu Cyongereza ashyira mu Kinyarwanda. Ubwo rero ntitugomba gutegereza ko basobanura ubutumwa butanzwe mu ndimi ijambo ku rindi. Ku bw’ibyo hashobora kuvugwa “indimi nkeya” nyamara ubutumwa burimo ari burebure iyo zisobanuwe, cyangwa na none indimi zikaba nyinshi kandi zasobanurwa, ubutumwa burimo bukaba ari bugufi.

Impano yo gusobanura indimi isa cyane n’iy’ubuhanuzi kuko na yo nta hishurirwa igira ubwayo kandi ubusanzwe yaba iyo kungura, guhugura no guhumuriza. Ndetse twanavuga ko, dukurikije 1 Abakorinto 14:5, kuvuga indimi hamwe no gusobanura indimi bibyara ubuhanuzi:

Uhanura aruta uvuga izindi ndimi, keretse azisobanuye kugira ngo itorero ryunguke.

Nk’uko nabivuze mbere, nta mabwiriza yatanzwe muri Bibiliya y’uburyo impano z’imbaraga zigomba gukoreshwa, ku mpano zo guhishurirwa hari amabwirizwa make cyane, ariko ahubwo hakaba amabwirizwa menshi yerekeranye n’uko umuntu yakoresha impano zo kuvuga. Kuko hariho ubujiji mu itorero ry’i Korinto ku bijyanye no gukoresha impano zo kuvuga, Pawulo yabifasheho hafi igice cyose cya cumi na kane cy’urwandiko rwa mbere rw’Abakorinto.

Ikibazo cyari gihari cyane cyane cyari kihiganje cyari icyo kumenya uburyo bwiza bwakoreshwa mu kuvuga indimi, kuko nk’uko twamaze kubibona mu gice kivuga ku kubatizwa mu Mwuka Wera, buri mwizera wese ubatijwe mu Mwuka Wera aba ashobora gusenga mu ndimi igihe cyose ashakiye. Abakorinto bavugaga mu ndimi cyane mu materaniro yabo, ariko nta gahunda yabaga ibirimo.

Uburyo Butandukanye Bwo Gukoresha Izindi Ndimi

The Different Uses of Other Tongues

Ni ngombwa cyane ko dusobanukirwa itandukaniro riri hagati yo kuvuga mu ndimi zitamenyekana mu ruhame no kuzivuga mu mwiherero. Nubwo buri mukristo wese wabatijwe mu Mwuka Wera ashobora kuvuga mu ndimi igihe cyose ashakiye, ntibishatse kuvuga ko Imana yamukoresha kuvuga mu ndimi mu ruhame. Akamaro k’ibanze ko kuvuga mu ndimi ni igihe umuntu yihereranye n’Imana mu bihe bye byo gusenga. Abakorinto bo iyo bateranaga, batangiraga bose icyarimwe kuvuga mu ndimi kandi nta n’usobanura, birumvikana kandi ko ibyo ntawe byunguraga (reba 1 Kor. 14:6-12, 16-19, 23, 26-28).

Uburyo bumwe bwo gutandukanya imikoreshereze y’indimi mu ruhame no mu mwiherero ni uko mu mwiherero byitwa gusenga mu ndimi naho mu ruhame bikitwa kuvuga mu zindi ndimi. Pawulo avuga kuri ubwo buryo bwombi mu gice cya cumi na kane cy’urwandiko rwe rwa mbere yandikira Abakorinto. Bitandukaniye he?

Iyo dusenga mu rurimi rutamenyekana, umwuka wacu uba usenga Imana (reba 1 Kor. 14:2, 14). Nyamara igihe umuntu agize atya ako kanya akamanukirwa n’amavuta y’impano yo kuvuga mu ndimi, buba ari ubutumwa buturutse ku Mwami Imana ihaye itorero (reba 1 Kor. 14:5), kandi ubwo butumwa bumenyekana igihe izo ndimi zisobanuwe.

Nk’uko Bibiliya ivuga, dushobora gusenga mu ndimi uko dushaka (reba 1 Kor. 14:15), ariko impano yo kuvuga mu zindi ndimi ikora uko Umwuka Wera ashaka (reba 1 Kor. 12:11).

Impano yo kuvuga mu zindi ndimi ubundi iba igomba guherekezwa n’impano yo gusobanura indimi. Ariko gusenga mu ndimi umuntu yiherereye byo ntibigomba gusobanurwa. Pawulo yavuze ko iyo asenga mu ndimi bitagira icyo byungura abandi (reba 1 Kor. 14:14).

Iyo umuntu asenga mu ndimi aba yiyungura ubwe gusa (reba 1 Kor. 14:4), ariko igihe impano yo kuvuga mu ndimi irimo ikora kandi iherekejwe n’impano yo gusobanura indimi Itorero ryose rirunguka (reba 1 Kor. 14:4b-5).

Buri mwizera wese akwiye gusenga mu ndimi buri munsi nka kimwe mu bigize ubusabane bwe n’Umwami Imana. Kimwe mu bintu byiza cyane byo gusenga mu ndimi ni uko bitagusaba gukoresha ubwenge. Ibyo bishatse kuvuga ko ushobora gusenga mu ndimi no mu gihe ubwenge bwawe buhugiye mu kazi urimo urakora cyangwa ibindi. Pawulo yabwiye Abakorinto ati, “Nshimira Imana yuko mwese mbarusha kuvuga indimi zitamenyekana” (1 Kor. 14:18). Agomba kuba yaramaraga igihe kirekire avuga mu ndimi kugira ngo arushe abo mu Itorero ry’i Korinto bose!

Pawulo kandi yanditse ko iyo dusenga mu ndimi, rimwe na rimwe tuba “dushima Imana” (1 Kor. 14:16-17). Incuro zigera kuri eshatu “nsenga mu ndimi” umuntu wari iruhande rwanjye wari uzi Ikiyapani yumvise ibyo navugaga. Izo ncuro zose uko ari eshatu navugaga Ikiyapani. Rimwe nabwiye Imana mu Kiyapani ngo, “Uri mwiza cyane.” Indi ncuro ndavuga ngo, “Urakoze cyane.” Ikindi gihe naravuze ngo, “Tebuka, tebuka; ndategereje.” Mbese ntibitangaje? Sinigeze niga n’ijambo na rimwe ry’Ikiyapani, ariko nibura incuro eshatu “nashimye Imana” mu Kiyapani!

Amabwiriza ya Pawulo yo Kuvuga Mu Ndimi

Paul’s Instructions for Speaking in Tongues

Amabwiriza ya Pawulo ku Itorero ry’i Korinto yari yihariye cyane. Muri buri teraniro ryose ribayeho, umubare w’abantu bemerewe kuvuga mu ndimi mu ruhame ntiwagombaga kurenga babiri cyangwa batatu. Ntibagombaga kuvugira rimwe bose, ahubwo buri wese yagombaga gutegereza uwe mwanya (reba 1 Kor. 14:27).

Pawulo ntiyashakaga kuvuga ko “ubutumwa butanzwe mu ndimi” bwemewe ari ubw’abantu batatu gusa, ahubwo yavugaga ko muri buri teraniro hatagomba kuba abantu barenga batatu bavuga mu ndimi. Bamwe bavuga ko iyo habaga hari abantu barenga batatu bamenyereye gukoreshwa muri iyo mpano yo kuvuga mu ndimi, uwo ari we wese muri bo yashoboraga kumva icyo Umwuka avuga maze agatanga “ubutumwa bwo mu ndimi” Umwuka ashaka ko butangwa mu itorero. Bitabaye ibyo, mu byukuri amabwiriza ya Pawulo yari kuba ashyiriraho Umwuka Wera umupaka mu gushyiraho umubare ntarengwa w’ubutumwa bwo mu ndimi bugomba gutangwa mu iteraniro iryo ari ryo ryose. Iyo Umwuka Wera aba atashoboraga na rimwe gutanga impano zo kuvuga indimi mu ruhame ku bantu barenga batatu mu iteraniro, nta mpamvu yari gutuma Pawulo atanga amabwiriza nk’ayo.

Ibi kandi byaba ukuri no ku gusobanura indimi. Bavuga ko hashobora kubaho mu iteraniro abantu barenze umwe kumva Umwuka no gutanga ubusobanuro bw’ “ubutumwa butanzwe mu ndimi.” Abantu nk’abo bakwitwa “abasobanuzi” (reba 1 Kor. 14:28), kuko baba bakoreshwa kenshi mu mpano yo gusobanura indimi. Niba ari uko bimeze, wenda ni byo yavugaga igihe yatangaga aya mbabwiriza ngo, “umwe asobanure” (1 Kor. 14:27). Birashoboka ko atavugaga ko umuntu umwe gusa ari we ugomba gusobanura ubutumwa bwose butanzwe mu ndimi; ahubwo yarabihanangirizaga ngo hatazabaho “kurushanwa gusobanura” ubutumwa bumwe. Igihe umusobanuzi umwe yabaga asobanuye ubutumwa butanzwe mu ndimi, nta wundi musobanuzi wari wemerewe kongera gusobanura ubwo butumwa bumwe, nubwo yaba yumva ko yatanga ubusobanuro bwiza kurushaho.

Muri rusange, ibintu byose bigomba gukorwa “neza kandi kuri gahunda” mu materaniro y’itorero–ntihagomba kuba akajagari k’abantu bavugira rimwe birimwo kurushanwa n’urujijo. Kandi abizera bagomba kwibuka abatizera bashobora kuba baje guterana, nk’uko Pawulo yanditse ati:

Nuko rero iteraniro ryose iyo riteraniye hamwe, bose bakavuga indimi zitamenyekana hakinjiramo abatarajijuka cyangwa abatizera, ntibazavuga ko musaze? (1 Kor. 14:23).

Icyo ni cyo nyine cyari ikibazo cy’i Korinto–bose bavugira mu ndimi icyarimwe, kandi akenshi nta n’uhari wo gusobanura.

Amabwiriza Amwe Ku Mpano Zo Guhishurirwa

(Some Instruction Concerning Revelation Gifts)

Hari amabwiriza Pawulo yatanze ku byerekeranye n'”impano zo guhishurirwa” ku bijyanye n’uburyo zikorera mu bahanuzi:

N’abahanuzi na bo bavuge ari babiri cyangwa batatu, abandi babigenzure. Ariko undi wicaye, nashoka ahishurirwa, uwabanje ahore kuko mwese mubasha guhanura umwe umwe, kugira ngo bose babone uko bigishwa no guhugurwa. Imyuka y’abahanuzi igengwa nab o, kuko Imana itari iy’umuvurungano, ahubwo ari iy’amahoro; nk’uko bimeze mu matorero yose y’abera (1 Kor. 14:29-33).

Nk’uko hari hariho bamwe bo mu itorero ry’i Korinto urebye bakoreshwaga kenshi mu mpano yo gusobanura indimi bari bazwi nk “abasobanuzi,” hari hariho n’abakoreshwaga kenshi mu mpano z’ubuhanuzi no guhishurirwa bafatwaga nk’ “abahanuzi.” Aba ntabwo bari abahanuzi mu rwego rw’abahanuzi bo mu Isezerano rya Kera cyangwa umuntu nka Agabo wo mu Isezerano Rishya (reba Ibyak. 11:28; 21:10). Ahubwo umurimo wabo wagarukiraga ku matorero y’iwabo.

Nubwo hashoboraga kuba abahanuzi nk’abo barenga batatu mu iteraniro, na none Pawulo yashyizeho imipaka, avuga ku buryo busobanutse neza ko abahanuzi batagomba kurenga “babiri cyangwa batatu.” Ibi na none birerekana ko iyo Umwuka yatangaga impano z’Umwuka mu iteraniro, abantu barenga umwe bashoboraga kuzihabwa. Bitabaye ibyo, amabwiriza ya Pawulo yatuma gutanga impano k’Umwuka kutigera kwishimirwa n’itorero, kuko yagenaga umubare ntarengwa w’abahanuzi bashobora kuvuga.

Niba mu materaniro hariho abahanuzi barenga batatu, abandi nubwo batemerewe kuvuga, bashoboraga gufasha mu kugenzura ibivuzwe. Ibi na byo birerekana ubushobozi bwabo bwo kurobanura bakamenya icyo Umwuka avuga ndetse bikanumvikanisha ko ubwabo babaga bari mu Mwuka bashobora gukoreshwa mu mpano zimwe n’izabaga zirimo gukorera muri abo bahanuzi bandi. Naho ubundi bitabaye ibyo bagenzura ubuhanuzi n’amahishurirwa mu buryo rusange, bakareba gusa ko bihuye n’ihishurirwa Imana yamaze gutanga (nk’Ibyanditswe byera), kandi ibyo umwizera uwo ari we wese ukuze mu Mwuka yabikora.

Pawulo kandi yavuze ko abo bahanuzi bose bashobora guhanura bakurikirana (reba 1 Kor. 14:31) kandi ko “imyuka y’abahanuzi igengwa na bo” (1 Kor. 14:32), bikerekana ko buri muhanuzi ashobora kwifata akirinda guciramo undi, nubwo Umwuka yaba amuhaye ubuhanuzi cyangwa ihishurirwa ageza ku itorero. Ibi byerekana ko Umwuka ashobora guha impano abahanuzi benshi icyarimwe mu iteraniro, ariko buri muhanuzi akaba ashobora kandi agomba kwifata akamenya igihe gikwiye cyo kugira ngo ageze ubuhanuzi bwe cyangwa ihishurirwa ku itorero.

Ibi kandi ni cyo kimwe no ku mpano yindi yo kuvuga iyo ari yo yose yakorera mu mwizera. Igihe umuntu mu materaniro ahawe ubutumwa mu ndimi cyangwa ubuhanuzi buvuye ku Mwami Imana, ashobora kuba abugumanye kugeza igihe aza kubonera igihe gikwiriye. Byaba ari bibi guciramo undi urimo ahanura cyangwa yigisha kugira ngo utange ubuhanuzi bwawe.

Igihe Pawulo yavugaga ati, “mwese mubasha guhanura umwe umwe” (1 Kor. 14:31), wibuke ko yavugaga igihe haba hari abahanuzi bose bahawe ubuhanuzi. Ikibabaje ni uko hari ababifashe ukundi kutari uko Pawulo yavugaga, bakavuga ko buri mukristo wese ashobora guhanura muri buri teraniro ry’itorero. Impano y’ubuhanuzi itangwa uko Umwuka ashatse.

Muri iki gihe, kurusha ikindi gihe icyo ari cyo cyose kigeze kubaho, itorero rikeneye ubufasha bw’Umwuka Wera, kubaho kwe, imbaraga ze n’impano ze. Pawulo yakanguriye abizera b’i Korinto “kwifuza impano z’Umwuka, ariko cyane cyane guhanura” (1 Kor. 14:1). Ibyo byerekana ko aho tugeza twifuza bifite uko bigendana no gukora kw’impano z’Umwuka, naho ubundi Pawulo ntaba yaratanze amabwiriza nk’ayo. Umukozi w’Imana uhindura abantu abigishwa, wifuza gukoreshwa n’Imana kubw’icyubahiro cyayo, azifuza cyane koko impano z’Umwuka kandi azigisha n’abigishwa be kugenza batyo.

Day 96, 1 Corinthians 14


The early church gatherings were not characterized by the majority passively listening to a trained clergyman. Rather, there was participation among everyone who shared what the Holy Spirit gave him. Thus it could be said, as Paul did, “When you assemble, each one has a psalm, has a teaching, has a revelation, has a tongue, has an interpretation” (14:26).

There was, however, some disorder at believers’ gatherings in Corinth. Specifically, there were three groups that were speaking when they should not have been. Some, for example, were publicly speaking in tongues without any interpretation, which provided no benefit to the gathering. Paul instructed such folks to “keep silent in the church” (14:28). They should speak to themselves and God.

Why would God give someone the ability to speak in tongues without the accompanying gift of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that Paul listed in 12:10, especially since one who spoke publicly in tongues without an interpretation was out of order?

The only possible answer, and one that harmonizes with the experience of millions of Christians, is that the ability to pray in tongues is different than the spontaneous “gift of tongues.” The former is something that the Lord grants believers when they are first baptized in the Spirit. That supernatural ability operates any time they will it from then on, just as Paul indicated in 14:15, while the genuine “gifts of tongues” operates only as the Spirit wills (12:11). The former is for private use by believers in their personal devotions for self-edification, and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praying (14:14), whereas the latter is for the public benefit of the church, and is always accompanied by the “gift of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otherwise God would be the source of disorder).

All of this is to say that there must be two kinds of speaking in tongues. In Corinth, Spirit-baptized believers were speaking out in tongues, but not because they were suddenly anointed by the Spirit to do so, which would be a manifestation of the “gift of tongues.” Rather, they were publicly speaking out in tongues using their ability to pray in tongues, given to them from the time they were baptized in the Holy Spirit.

In this light, Paul’s rhetorical question that we read in chapter 12, “All do not speak with tongues, do they?” (12:30), is easy to harmonize with other scriptures that lead us to believe that speaking in tongues can be experienced and enjoyed by every believer once he or she is baptized in the Spirit. Paul’s question referred to the spontaneous “gift of tongues,” not to the ability to pray in tongues.

Paul really encouraged the practice of prophecy and then he corrected two other groups who were speaking out of order—certain prophets and certain wives. I don’t believe that Paul’s instruction to women to “keep silent in the churches” (14:34) was intended to keep them completely and continually silent any time the churches gathered. He had already written in this very letter about women publicly praying and prophesying (11:5). Paul was specifically addressing wives who were interrupting the flow of the gathering by conversing with their husbands.

Keep in mind that in this same chapter, Paul also told two other groups to be “silent”—out-of—order tongues speakers (14:28) and certain prophets (14:30). In neither case did he mean that they were to remain completely and continually silent any time the churches gathered.

Granted, this chapter in Corinthians raises as many questions as it answers. Some statements within it seem so contradictory from one verse to the next that some commentators think Paul was quoting from the letter that the Corinthians had written to him, and then immediately correcting what they wrote. For example, they believe that the words about women in 14:34-35 are a quote from the Corinthians’ letter, and the verse immediately following is Paul’s rebuttal: “Was it from you that the word of God first went forth? Or has it come to you only?” (14:36). That is, “Who are you to be making up such regulations about women not speaking? Are you the final authority from God on the matter?” Many women approve of that interpretation!

Day 95, 1 Corinthians 13


It is fun to read this famous chapter, so often recited in sermons about love, within its context of the entire Corinthian letter. It appears that everything that Paul wrote to define love has some direct application to a situation in Corinth, where love was definitely lacking.

For example, when we read the very next chapter in 1 Corinthians, we’ll learn that speaking in tongues had superseded love in the Corinthian church. Some were speaking with other tongues in a selfish manner. Paul’s lovely and poetic words that are often read at wedding ceremonies—“If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do not have love, I have become a noisy gong or a clanging cymbal”—were a stinging rebuke to the Corinthians. Truly, there is little that is more obnoxious than a Pentecostal gong or Charismatic clanger! All noise, no love!

Similarly, Paul puts spiritual gifts, with which the Corinthian believers were so enamored, into their proper perspective. One might possess the gift of prophecy, amazing revelation, and even mountain-moving faith, but without love, he amounts to absolutely nothing (13:2). Such words no doubt deflated many Corinthian egos as they were first read. Love is the important thing.

Paul also points out the fact that not all that appears to be loving is love. One can do “unselfish” things for selfish reasons, including giving to the poor and making great personal sacrifices, if such things are done for the praise of others. Paul reiterates what Jesus taught; there will be no reward for such “good deeds.” The selfish “lover” profits nothing (13:3).

Let’s imagine we are Corinthians as we read Paul’s definition of love. Here is more of what we might hear:

“Love is patient, so it waits for everyone to show up at the Lord’s Supper before eating. Love does not brag, and it is not arrogant about favorite Christian leaders, saying, ‘I am of Paul’ and, ‘I am of Peter.’ Love does not seek its own, and so it is willing to forgo eating meats sacrificed to idols if a fellow saint with a weak conscience might be caused to stumble. Love does not rejoice in unrighteousness, such as when it knows that a man in the church is living in an immoral relationship with his stepmother. Rather, love rejoices in the truth. Love also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and endures all things, so those of you who are always complaining about each other need to stop grumbling!”

Some say that Paul’s foretelling that tongues would cease, along with the other spiritual gifts that he mentions such as the word of knowledge and prophecy, was fulfilled when the last book of the Bible was written, because Paul wrote,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but when the perfect comes, the partial will be done away” (13:8-10). Supposedly, we no longer need spiritual gifts since we have the complete Bible.

The truth is, however, that even with the complete Bible, we still “know in part,” and we continue to “see in a mirror dimly” (13:9, 12). Only when Jesus is reigning on this earth will that no longer be true. And that is comforting to those of us, like me, who are perplexed about so many things now. Think of how different your understanding was when you were a child compared to how it is now as an adult. Similarly, when you are in the future kingdom, you will look back at your earthly life and say to yourself, “How very little I understood!” Now it is as if we are looking at everything in a mirror’s reflection, and under dim light! Everything is backwards and indistinct, and we’re only seeing a small fragment of the entire picture. We know so very little that there is no room for pride, as Paul wrote a few chapters earlier, “If anyone supposes that he knows anything, he has not yet known as he ought to know” (1 Cor. 8:3).

I know so little. I am D—U—M dum! But don’t laugh at me! You’re a dummy reading a commentary written by another dummy!

Day 81, Mark 16


Although Jesus repeatedly told His disciples that He would be killed and rise from the dead after three days (see Mark 8:31, 9:31, 10:34), they never got it. Even when Mary Magdalene reported to them on Sunday morning that Jesus was alive and that she had seen Him, they still didn’t believe (16:11). And that evening, when two men, whom Jesus appeared to on the road to Emmaus, reported an encounter with Jesus, they still refused to believe (Luke 24:12-16). I always feel better about myself when I read about those future church leaders. With Jesus, there is hope even for me!

On Sunday evening, while they were still “mourning and weeping” (Mark 16:10) over Jesus’ death and hiding “for fear of the Jews” (John 20:19), the eleven found that there was one Jew from whom they couldn’t hide, namely Jesus. According to Luke’s account, just as they were expressing their disbelief at the report of the two Emmaus road disciples, Jesus appeared in their midst. Excellent timing on His part, and I imagine they almost jumped out of their skins. The first thing He did was reproach them “for their unbelief and hardness of heart” (16:14). He didn’t say, however, “That was the last straw, and I’m through with you!” Rather, after He rebuked them, He commissioned them to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Jesus gives jobs to bone-heads, which again makes me feel better.

Jesus also told them about some supernatural signs that would follow those who believe. In the book of Acts, we see that those signs were fairly common. On at least three occasions, we read in Acts of believers speaking in tongues, which was the most common of the five signs. We also read of demons being cast out and people being healed through the laying on of hands.

The only example of “picking up serpents” we have in the book of Acts is when Paul was bitten by a poisonous snake on the island of Malta (Acts 28:1-5). It should have killed him, but he shook it off and suffered no harm. A few folks have interpreted Jesus’ words about picking up serpents to mean that God wants us to have snake-handling services in our churches. That, however, would fall into the category of tempting God. You won’t find any snake-handling services in the book of Acts!

Similarly, there is no record of anyone drinking poison and not suffering any harm. Certainly we should not intentionally drink poison to prove our faith, thus tempting God. If someone intentionally poisons us, we then have the right to claim it won’t hurt us.

Some have challenged the inspiration of Mark 16:9-20, claiming it was added later to Mark’s original Gospel by an over-zealous scribe (a Pentecostal one, no doubt!). Although Mark 16:9-20 is not included in some early manuscripts, 16:9 was cited by Iranaeus, and 16:20 was referred to by Justin Martyr, both well-known second-century Christian apologists and church fathers.

You’ve probably heard the story of the mother who excitedly called her son, who was studying at a seminary, to tell him some good news. She had just visited a Pentecostal church, and the pastor’s sermon had been on the various supernatural signs that would accompany believers found in Mark 16:17-18. At the end of the service, she had gone forward to receive prayer, and found herself speaking in a language she had never learned. She was ecstatic, and thought her son would be just as overjoyed.

He, however, explained to her that, according to some of his seminary professors, Mark 16:9-20 was not found in some ancient manuscripts, and was thus considered to be uninspired. She was, however, undaunted by his dousing, enthusiastically responding, “Wow! If God can do all that with uninspired verses, imagine what He can do with inspired ones!”

The fact is, even if we do away with Mark 16:9-20, we still have the entire book of Acts, not to mention Jesus’ words, “He who believes in Me, the works that I do, he will do also; and greater works than these he will do” (John 14:12). So let them remove those “uninspired verses” if they want to!

Day 36, Acts 8

Some suggest that God permitted the Jerusalem persecution so that the gospel might be spread outside of Jerusalem. Jesus did command His disciples to take the gospel to Jerusalem,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earth (Acts 1:8), and it was to Judea and Samaria that the Jerusalem believers were scattered (8:1). Wherever they went, they shared the gospel (8:4). How many saints have experienced God’s redemptive purposes in what first appears to be their misfortune? I certainly have. When “all hell breaks loose,” heaven has a plan.

Philip is the only person named in the New Testament as an evangelist. He was also a cross-cultural missionary, as he ministered to people of a different ethnicity. (Remember that Jews and Samaritans generally hated each other.)

Notice that Philip’s ministry was anointed with gifts of healing and other miracles, as paralyzed and lame people were healed and the demonized were delivered. If Philip had not been so supernaturally equipped, his message may well have gone unheard, because Simon the magician had already captured the Samaritans’ attention with his magic arts. Isn’t it tragic that so much of the modern church is powerless, sometimes even denying God’s supernatural power, while cults and false religions promote themselves by means of minor miracles of satanic origin? Help us, Lord!

We read today that the people of Samaria believed Philip’s gospel and were being baptized, having “received the word of God” (8:12-14). They were thoroughly born again. Yet we also read that the Holy Spirit “had not yet fallen upon any” of those thoroughly born-again believers (8:16). The Holy Spirit was inside them through the new birth, but He had not yet come upon them. They still needed to be clothed with power, and that is precisely why Peter and John journeyed to Samaria—“that they might receive the Holy Spirit” (8:15). This is one more indication that there is a second experience with the Holy Spirit that is available to every believer.

These truths are so plain and simple that only theologians can deny them. Nothing is said in this passage that this incident was some kind of one time, special event orchestrated by God so that the Samaritan church would have a visible divine endorsement that would never be needed again. It was nothing more than what Scripture says it was: The Samaritans who believed in Jesus were born again but had not experienced the baptism in the Holy Spirit. So Peter and John traveled to Samaria to pray for them that they might receive the Spirit.

When Peter and John prayed for those new believers in Samaria, the Bible doesn’t say that they spoke in tongues, yet we know something supernatural happened, because Simon saw something so spectacular that he tried to buy the ability to impart the Holy Spirit. He had already seen healings take place and demons being cast out (8:7), so whatever he witnessed must have been quite amazing. It seems safe to assume that they were speaking in tongues, just as Peter and John did along with 118 others on the day of Pentecost.

The story of the Ethiopian eunuch teaches us that God knows how receptive every person is, and that He will lead us to spiritually hungry people. This eunuch was ripe for salvation, reading from the most messianic chapter of the entire Old Testament, wondering what it meant! An evangelist’s dream come true! We should ask God to guide us to receptive people.

Immediately after the eunuch made his confession of faith in Jesus, Philip baptized him in water. This was the first indication that the eunuch truly believed in Jesus. People who say they believe in Jesus but who are unwilling to obey His simple command to be baptized are fooling themselves.

Finally, notice that there was no way for Philip to “follow up” on his new convert, because he was immediately and supernaturally transported to another location. The modern urgent necessity of following up on new “converts” is an indictment against the impotence of the modern gospel. True disciples will abide in Christ’s word, just as He said (see John 8:31). They won’t need to be coerced to act like believers.

Day 30, Acts 2

God baptized the disciples in the Holy Spirit to empower them to take the gospel to all the nations, or more specifically, to all peoples, tribes and tongues. As those 120 disciples spoke supernaturally in languages they had never learned, it was a sign to them of the purpose of their Spirit baptism. They knew they were speaking in languages of people somewhere in the world whom God wanted to reach. Those who speak in other tongues today must be careful not to place so much emphasis on the supernatural sign that they forget that the sign is designed to point them to a world dying without Christ.

Speaking in tongues has become, unfortunately, a divisive issue. Some believe that speaking in other tongues can be experienced by every believer. Others believe it is only for some. Still others believe it was only for the first-century Christians.

I happen to be in the first category, but I do not think that those who speak in other tongues are superior to those who do not speak in other tongues. In fact, I sometimes think the opposite! As Paul later wrote, “If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do not have love, I have become a noisy gong or a clanging cymbal” (1 Cor. 13:1). Love is much more important than speaking in other tongues. It is, in fact, the first fruit of the Spirit (see Gal. 5:22).

Notice that at the outpouring of the Holy Spirit on the day of Pentecost, all the believers who were present spoke in other tongues. God did not differentiate between them. Notice also that Peter told the astonished observers, “Repent…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For the promise [the promise he had just quoted—‘I will pour forth of My Spirit on all mankind’] is for you and your children and for all who are far off, as many as the Lord our God will call to Himself” (2:38-39).

Peter believed that God wanted to pour His Spirit upon everyone who would repent. Did Peter believe that those in his audience, unlike the 120 in the upper room, would receive the Spirit without any supernatural evidence? No, he believed that the Spirit’s outpouring would result in gifts of prophecy and visions and dreams (2:17-18). Certainly everyone’s speaking in tongues fell under the category of prophecy, as each believer was heard “speaking of the mighty deeds of God” (2:11) in known languages. Peter believed Joel’s prophecy was being fulfilled before them.

Some claim that God gave the disciples the ability to speak in foreign languages so they could preach the gospel to foreign people in their native tongues. They argue that the modern tongue-talkers do not proclaim the gospel to foreign people with their unintelligible languages. The fact is, however, that nothing is said anywhere in the book of Acts about speaking in tongues being used to proclaim the gospel. No one heard the gospel on the day of Pentecost until Peter started preaching.

Notice that during his Pentecost sermon Peter never asked anyone to “invite Jesus into his heart” or “accept Jesus as her personal Savior.” His formula for receiving salvation was simple: repent and be baptized. There is no salvation without repentance. When you repent, you turn from your sin and start following Jesus, your new Lord. Your first act of faith is to be baptized in obedience to His command, as were the 3,000 new believers of which we read today (2:41).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early Christians is that they “had all things in common,” and were “selling their property and possessions and were sharing them with all, as anyone might have need” (2:44-45). This was nothing more than simple obedience to what Christ told all His followers to do (see Luke 12:33). It stands in stark contrast to what is being pandered today by prosperity preachers, who tell already-rich people to gather more, while the Lord Jesus told relatively poor people to liquidate what they already had accumulated. Someday we must all give an account.

فصل هفدهم (Chapter Seventeen)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The Gifts of the Spirit)

 

انجیل پر است از مثالهایی از زنان و مردانی که ناگهان قدرت ماورایی از روح القدس دریافت کردند. در عهد جدید، این قدرت های ماوراء طبیعی، «عطایای روح» نامیده می شوند. آنها عطیه نامیده می شوند از این روی که اکتسابی نیستند. اما نباید فراموش کنیم که خداوند آنهایی را که مورد اعتمادش هستند ترفیع می دهد. مسیح گفت: «آنكه‌ در اندك‌ امين‌ باشد درامر بزرگ‌ نيز امين‌ بُوَد و آنكه‌ در قليل‌ خائن‌ بُوَد دركثير هم‌ خائن‌ باشد» (لوقا 10:16). بنابراین،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احتمالاً به کسانی داده خواهد شد که صداقت و امانتداری خود را در برابر خداوند ثابت کرده باشند. کاملاً در تسلیم روح القدس بودن، بسیار مهم است و خداوند چنین افرادی را برای دادن قدرت خارق العاده انتخاب می کند. از سویی دیگر، یکبار خداوند الاغی را برای پیشگویی انتخاب کرد، پس او هر کس را که بخواهد می تواند به کار برد. اگر او می خواست صبر کند تا ما کامل شویم، اصلاً هیچ کدام از ما را انتخاب نمی کرد!

در عهد جدید،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که 9 مورد هستند در اول قرنتیان 12 آمده است:

مثلا روح القدس به یکی بیان حکمت عطا میکند و به دیگری بیان معرفت به یکی ایمان میبخشد و به دیگری قدرت شفا دادن، به یکی قدرت اعجاز و به دیگری قدرت نبوت و به سومی عطیۀ تشخیص ارواح عطا میکند ، به یکی قدرت تکلم بزبانها و به دیگری قدرت ترجمه زبانها را میبخشد (اول قرنتیان 8:12-10).

دانستن اینکه هر عطیه را چطور باید تعریف کنیم، برای استفاده توسط خداوند ، ضروری نیست. رسولان، کاهنان، پادشاهان در عهد عتیق و همینطور خادمان اولین کلیساهای عهد جدید همه از عطایای روح استفاده کردند بدون اینکه بدانند چطور باید آنها را طبقه بندی و یا تعریف کنند. با این حال، از آنجایی که عطایای روح در عهد جدید برای ما طبقه بندی شده، باید چیزی وجود داشته باشد که خدا می خواهد ما بدانیم. در واقع، پولس نوشت، «و اما در بارۀ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ای برادران ، من نمیخواهم در این خصوص بی اطلاع باشید» (اول قرنتیان 1:12).

دسته بندی نَه عطیه (The Nine Gifts Categorized)

نه عطیۀ روح به طور مفصل تر در سالهای اخیر به سه دسته تقسیم شده است: 1) عطایای سخن که انواع مختلف زبان، قدرت تعبیر زبانها و نبوت هستند، 2) عطایای مکاشفه که بیان معرفت، بیان حکمت و تشخیص ارواح هستند، 3) عطایای قدرت که قدرت اعجاز، ایمان و عطایای شفا هستند. سه مورد از این عطایا چیزی می گویند؛ سه مورد چیزی را آشکار می کنند و سه مورد هم کاری انجام می دهند. تمام این عطایا به جز انواع زبانها و قدرت تعبیر زبانها (که مربوط به عهد جدید هستند)، در عهد عتیق بازنمود یافتند.

عهد جدید هیچ دستورالعملی در رابطه با استفادۀ «عطایای قدرت» ارائه نمی دهد و تنها توضیح مختصری دربارۀ چگونگی استفاده از «عطایای مکاشفه» دارد. اما دربارۀ استفادۀ درست از «عطایای سخن» آموزه های مفصلی از پولس وجود دارد و احتمالاً دو دلیل برای این مسئله وجود دارد.

اول، عطایای سخن آنهایی هستند که در گردهمایی های کلیسا بسیار رخ می دهند در حالی که عطایای مکاشفه به ندرت و عطایای قدرت از همه کمتر رخ می دهند. در نتیجه ما به تعالیم بیشتری در رابطه با عطایایی که به دفعات بیشتری رخ می دهند، نیاز داریم.

دوم، عطایای سخن بیشترین همکاری را از جانب انسان ایجاب می کنند و بنابراین احتمال اینکه به غلط استفاده شوند زیاد است. بسیار آسانتر است که پیشگویی را تباه کنیم و یا چیزی به آن اضافه کنیم تا اینکه عطایای شفا را از بین ببریم.

زمانی که روح اراده می کند (As the Spirit Wills)

بسیار مهم است که بدانیم، عطایای روح زمانی داده می شوند که او اراده می کند، نه زمانی که شخص می خواهد. انجیل این مسئله را تقریباً روشن کرده است:

اما کلیۀ این عطایا کار یک روح واحد است و او آنها را بر طبق ارادۀ خود به هر کس عطا می فرماید (اول قرنتیان 11:12 همراه با تاکید).

و در ضمن ، خدا با آیات و و عجایب و انواع معجزات و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طبق ارادهً خود گواهی آنان را تصدیق فرمود (عبرانیان 4:2، همراه با تاکید).

ممکن است شخصی بارها در عطایای خاصی مورد استفاده قرار بگیرد، اما هیچ کس صاحب آنها نیست. اینکه شما یکبار برای انجام معجزه ای تدهین شده اید دلیلی نیست بر اینکه می توانید معجزه را هر زمانی که خواستید انجام دهید؛ تضمینی نیز بر این نیست که شما دوباره معجزه ای انجام خواهید داد.

در ادامه به طور خلاصه چند نمونۀ انجیلی از هر عطیه را بررسی خواهیم کرد. اما یادتان باشد که خداوند قدرت و رحمت خود را به روش های نامحدودی می تواند آشکار کند، بنابراین تعریف اینکه عطایا هر بار چطور عمل می کنند بسیار مشکل است. به علاوه، هیچ تعریفی برای این نه عطیه در کتاب مقدس وجود ندارد، تنها چیزی که داریم عنوان آنهاست. بنابراین، ما می توانیم به مثالهای انجیل نگاهی داشته باشیم و تلاش کنیم که بفهمیم هر کدام تحت چه عنوانی قرار می گیرند، و در نهایت با توجه به تفاوت های ظاهری آنها، تعریفشان کنیم. از آنجایی که روح القدس به روش های زیادی می تواند خود را از طریق عطایای ماورایی بازنمود کند، ارائۀ تعاریف خیلی صریح عاقلانه نیست. برخی از عطایا می توانند ترکیبی از چند عطیه باشند. پولس دربارۀ این خطوط نوشت:

عطایای روحانی گوناگون است اما همۀ آنها را یک روح میبخشد. خدمات ما گوناگون است اما تمام این خدمات برای یک خداوند است. فعالیتهای ما نیز مختلف است اما یک خدا است که در همه عمل میکند. در هر فرد، روح خدا به نوعی خاص برای خیریت تمام مردم تجلی می کند (اول قرنتیان 4:12-7، همراه با تاکید).

عطایای قدرت (The Power Gifts)

1) عطایای شفا: واضح است که عطیای شفا با افراد مریض که شفا می یابند، سر و کار دارند. آنها اغلب به عنوان موهبتی ناگهانی و ماورایی تعریف می شوند که برای شفای افرادی که از لحاظ جسمانی بیمارند، هستند و به نظر من دلیلی وجود ندارد که این مسئله را مورد تحقیق قرار دهیم. در فصل قبل، مثالی از عطیۀ شفا بررسی کردیم از عیسی زمانی که مردِ کنار استخر بیت حسدا را شفا داد، آشکار شد (یوحنا 2:5-17 را ببینید).

خداوند الیشع را برای شفای نعمان جذامی که اهل سوریه و بت پرست بود، استفاده کرد (دوم پادشاهان 1:5-14 راببینید). همانطوری که هنگام بررسی سخنان مسیح در لوقا27:4 دربارۀ شفا یافتن نعمان، متوجه شدیم، الیشع هر زمانی که می خواست قادر به شفا جذامی ها نبود. ناگهان به او به صورت ماورایی الهام شد که نعمان را به غوطه ور شدن در رود اردن هدایت کند و زمانی که نعمان سرانجام اطاعت کرد، شفا یافت.

خداوند پطرس را برای شفای مرد فلجی که کنار دروازۀ زیبا می نشست، از طریق عطۀ شفا، انتخاب کرد (اعمال رسولان 1:3-10). نه تنها این مرد شفا یافت، بلکه این نشانۀ ماورایی، بسیاری از مردم را به شنیدن انجیل از زبان پطرس جذب کرد و در آن روز در حدود پنج هزار نفر به کلیسا اضافه شدند. عطایای شفا بارها دو هدف را به انجام رساند، شفای بیماران و ترغیب مردم نجات نیافته به سوی مسیح.

زمانی که پطرس پیغام خود را به مردمی که در آن روز جمع شده بودند می رساند، گفت:

ای اسرائیلیان چرا از دیدن این امر تعجب میکنید؟ چرا به ما خیره شده اید؟ خیال میکنید که ما این شخص را با تقوی و نیروی خود شفا داده ایم ؟ (اعمال رسولان 12:3).

پطرس تصدیق کرد که به دلیل قدرت و یا تقدسش نبوده که خداوند او را برای شفای مرد مفلوج استفاده کرده است. یادتان باشد که پطرس تنها دو ماه قبل از این معجزه حتی انکار کرده بود که مسیح را می شناسد. این حقیقت در صفحات اول اعمال رسولان، که خداوند پطرس را چنین معجزه وار به کار برد، به ما اطمینان می دهد که خداوند زمانی که بخواهد ما را هم مورد استفاده قرار خواهد داد.

اینکه پطرس می دانست که مرد توسط «عطیۀ شفا»، بهبود یافته باشد، بسیار بعید به نظر می رسد. تنها چیزی که او می دانست این بود که همراه با یوحنا از کنار مرد مفلوجی رد می شدند که ناگهان احساس کرد برای شفای این مرد با ایمان مسح شده است. بنابراین در حالی که با دست راست او را گرفت و بلندش کرد، به او امر کرد که به نام عیسی راه رود. مرد مفلوج «جست و خیز کنان و حمد گویان به راه افتادپطرس این رویداد را اینگونه توضیح داد:

قدرت نام عیسی این شخص را که می بینید و می شناسید نیرو بخشیده است . بوسیلۀ ایمان به نام او این کار انجام شده است. آری ، در حضور جمیع شما ایمان به عیسی او را سالم و تندرست کرده است (اعمال رسولان 16:3).

ایمان خاصی لازم است که بازوی مرد مفلوجی را بگیریم و او را بلند کنیم و توقع داشته باشیم که راه برود! همراه با این عطیۀ خاص شفا، ایمانی لازم است که رخ دادن آن را مهیا کند.

برخی معتقدند که علت اینکه این عطیه به صورت جمع (عطایا) به کار می رود این است که انواع مختلفی از عطایا برای بیماری های متفاوت وجود دارد. آنهایی که بارها برای عطایای شفا مورد استفاده قرار گرفته اند متوجه شده اند که برخی بیماری ها از طریق خدمت آنها بیشتر از بیماری های دیگر شفا می یابند. مثلاً، فیلیپس مبشر، بیشتر افراد مفلوج و لنگ را شفا می داد (اعمال رسولان 7:8). یا مثلاً برخی از مبشران قرن گذشته هستند که بسته به اینکه کدام عطایای شفا بیشتر از طریق آنها آشکار شده باشد، موفقیت زیادی در شفا دادن نابینایی و ناشنوایی و بیماری های قلبی داشته اند.

2) عطیۀ ایمان و معجزه کردن: عطیۀ ایمان و عطیۀ معجزه کردن به نظر بسیار شبیه به هم هستند. در هر دو فردی که تدهین شده، ناگهان ایمانی را برای غیرممکن دریافت می کند. تفاوت میان این دو اغلب این صورت تعریف می شود: با عطیۀ ایمان به شخصِ مسح شده، ایمان داده می شود تا معجزه ای برای خودش دریافت کند در صورتی که با عطیۀ انجام معجزه، به شخص ایمان داده می شود که معجزه ای برای شخص دیگری انجام دهد.

گاهی از عطیۀ ایمان به عنوان «ایمان خاص» یاد می شود زیرا این عطیه در واقع نوعی ایمان ناگهانی ورای ایمان معمولی است. ایمان معمولی، از شنیدن وعدۀ خداوند می آید، اما ایمان خاص از دهشی ناگهانی توسط روح القدس است. آنهایی که این ایمان خاص را تجربه کرده اند، می گویند که چیزهایی که به نظرشان غیر ممکن بوده ناگهان ممکن می شود، و در واقع شک کردن برایشان غیر ممکن می شود. در مورد عطیۀ انجام معجزه هم همینطور است.

داستان شَدرَك‌ و ميشك‌ و عَبِدنَغو، دوستان دانیال، مثالی عالی هستند که نشان می دهند چطور شک کردن غیرممکن است. زمانی که آنها را به دلیل عدم تعظیم در مقابل بُت پادشاه، در تون آتش انداخته شدند، به همۀ آنها عطیۀ ایمان خاص داده شد. برای اینکه در شعله های داغ و گدازان زنده بمانیم، باید ایمانی بیش از ایمان معمولی داشته باشیم! بیایید نگاهی داشته باشیم به ایمانی که این سه مرد در برابر پادشاه از خود نشان دادند:

شَدرَك‌ و ميشك‌ و عَبِدنَغو در جواب‌ پادشاه‌ گفتند: «اي‌ نَبوكَدنَصَّر! درباره‌ اين‌ امر ما را باكي‌ نيست‌ كه‌ تو را جواب‌ دهيم‌. اگر چنين‌ است‌، خداي‌ ما كه‌ او را مي‌پرستيم ‌ قادر است‌ كه‌ ما را از تون‌ آتش‌ ملتهب‌ برهاند و او ما را از دست‌ تو اي‌ پادشاه‌ خواهد رهانيد. اگر نه (اگر ما را به درون آتش نیفکنی)، اي‌ پادشاه‌ تو را معلوم‌ باد كه‌ خدايان‌ تو را عبادت‌ نخواهيم‌ كرد و تمثال‌ طلا را كه‌ نصب‌ نموده‌اي‌ سجده‌ نخواهيم‌ نمود (دانيال 16:3-18، همراه با تاکید).

توجه داشته باشید که عطیه حتی قبل از به آتش افکنده شدن آنها در حال عمل بود. در ذهن آنها شکی نبود که خداوند آنها را خواهد رهانید.

زمانی که ایلیا به مدت سه سال و نیم قحطی دوران پادشاه ظالم اخاب، که توسط کلاغها غذایش تهیه می شد، همان ایمان خاص را داشت (اول پادشاهان 1:17-6 را ببینید). ایمانی بیش از ایمان معمولی نیاز است که شخص اطمینان داشته باشد که خداوند پرندگان را برای رساندن غذای صبح و عصر به او استفاده خواهد کرد. اگرچه خداوند هیچ گاه وعده نداده است که کلاغها غذای روزانۀ ما را تامین خواهند کرد، اما می توانیم با ایمان معمولی که داریم مطمئن باشیم که خداوند نیازهای ما را برآورده خواهد کرد، زیرا او خود این وعده را داده است (متی 25:6-34 را ببینید).

معجزه بارها در طول خدمت موسی رخ داد. او زمانی که دریای سرخ را به دو نیم کرد (خروج 13:14-31 را ببینید). و زمانی که بلاهای مختلف در مصر شایع شدند، این عطیه را به کار برد.

عیسی هم زمانی که با چند ماهی و چند قرص نان 5000 نفر را غذا داد، در واقع معجزه کرد (متی 15:14-21 را ببینید).

اینکه پولس، علیما را که مانع خدمت او در جزیرۀ قبرس بود نابینا کرد (سبب نابینا شدن او شد)، هم معجزه ای بود که توسط او انجام پذیرفت (اعمال رسولان 4:13-12 را ببینید).

عطایای مکاشفه (The Revelation Gifts)

1) کلام معرفت و کلام حکمت: عطیۀ بیان معرفت اغلب به عنوان ابلاغ ناگهانی و ماورایی اطلاعاتی خاص، گذشته یا آینده، تعریف می شود. خداوندی که همۀ علم ها را دارد، برخی مواقع بخشی کوچک (شاید به همین دلیل کلام یا کلمه معرفت نامیده می شود) از آن علم را افشاء می کند. یک کلمه بخشی کوچک از جمله است و یک کلمه از دانش بخش کوچکی از دانش خواهد بود.

کلام حکمت بسیار شبیه به کلام معرفت است، اما اغلب به عنوان ابلاغ ماورایی و ناگهانی دانشی که از رخدادهای آینده خبر می دهد، تعریف می شود. مفهوم حکمت معمولاً شامل چیزی دربارۀ آینده است. اما این تعاریف تا حدی نظری هستند.

بیایید نگاهی بر مثالی از کلام حکمت که در عهد عتیق ثبت شده، بیندازیم. پس از آنکه الیشع، نعمان جذامی اهل سوریه را شفا داد، نعمان برای سپاسگذاری به او میزان زیادی پول داد. الیشع پول را نگرفت تا کسی فکر نکند که شفای نعمان به جای اینکه از طرف خداوند به او اعطا شده باشد، با پول خریده شده است. اما جیحزی غلام الیشع، با خود فکر کرد که فرصتی برای کسب ثروت به دست آورده است و به همین دلیل پنهانی مبلغی از پول مورد نظر نعمان را گرفت. پس از آنکه جحیزی وزنۀ نقره را که با فریبکاری به دست آورده بود پنهان کرد، نزد الیشع رفت. سپس می خوانیم،

و اِليشَع‌ وي‌ را گفت‌: «اي‌ جِيحَزي‌ از كجا مي‌آيي‌؟» گفت‌: «بنده‌ات‌ جايي‌ نرفته‌ بوداليشع‌ وي‌ را گفت‌: «آيا دل‌ من‌ همراه‌ تو نرفت‌ هنگامي‌ كه‌ آن‌ مرد از ارابة‌ خود به‌ استقبال‌ تو برگشت‌؟» (دوم پادشاهان 25:5-26).

خداوند که عمل زشت جیحزی را می دانست، به طور ماورایی به الیشع مسئله را الهام کرد. اما این داستان نشان می دهد که الیشع از عطیۀ کلام معرفت «برخوردار نبود»؛ یعنی همه چیز را دربارۀ همه و در همۀ زمانها نمی دانست. اگر او کلام معرفت داشت، جحیزی حتی تصور نمی کرد که بتواند گناه خود را پنهان کند. الیشع تنها زمانی که خداوند به او به طور ماورایی مسائل را آشکار می کرد، چیزها را می دانست. عطیه زمانی عمل می کرد که روح اراده می کرد.

مسیح هم زمانی که به زن سر چاه سامریه گفت که او پنج شوهر داشته، از بیان معرفت استفاده کرده بود

(یوحنا 17:4-18 را ببینید).

پطرس هم توسط همین عطیه متوجه شد که حنانیا و سفیره به جماعت حاضر در کلیسا دروغ گفتند و پولی که دادند کل پول حاصل از فروش زمین نبود (اعمال رسولان 1:5-11 را ببینید).

در مورد کلام حکمت، مظاهر زیادی در رسولان عهد قدیم از این عطیه می بینیم. توسط کلام حکت بود که رخدادهایی را در آینده پیش بینی می کردند. به مسیح هم این عطیه بارها اعطا شده بود. او ویران شدن اورشلیم، به صلیب کشیده شدن خودش، و حوادثی که قبل از آمدنش برای بار دوم رخ خواهند داد را پیش بینی کرده بود (لوقا 22:17-36 و 6:21-28 را ببینید).

یوحنای رسول هم زمانی که داوری دوران رنج و عذاب برایش آشکار شد از همین عطیه استفاده کرده بود.

2) عطیۀ تشخیص ارواح: این عطیه اغلب به عنوان توانایی ناگهانی و ماوراییِ دیدن و یا تشخیص دادن آنچه در عالم غیرمادی رخ می دهد، تعریف می شود.

رویایی که از طریق چشم و یا ذهن فردی مومن دیده می شود می تواند نوعی از تشخیص ارواح باشد. این عطیه مومن را قادر می سازد که فرشتگان، شیاطین، و حتی خود عیسی مسیح را ببیند، همانطوری که پولس بارها از طریق این عطیه با عالم غیر عادی ارتباط برقرار کرد (اعمال رسولان 9:18-10؛ 17:22-21؛ 11:23 را ببینید).

زمانی که الیشع و خادمش تحت تعقیب سپاهیان سوریه بودند، متوجه شدند که در شهر دوتان محاصره شده اند. زمانی که خادم الیشع برای بررسی اوضاع بیرون شهر رفت، متوجه شد که سربازان شهر را محاصره کرده اند و به همین دلیل اندکی نگران شد:

او گفت‌: «مترس‌ زيرا آناني‌ كه‌ با مايند از آناني‌ كه‌ با ايشانند بيشترندو اليشع‌ دعا كرده‌، گفت‌اي‌ خداوند چشمان‌ او را بگشا تا ببيندپس‌ خداوند چشمان‌ خادم‌ را گشود و او ديد كه‌ اينك‌ كوههاي‌ اطراف‌ اليشع‌ از سواران‌ و ارابه‌هاي‌ آتشين‌ پر است‌ (دوم پادشاهان 16:6-17).

آیا می دانستید که فرشتگان سوار بر اسب های غیرمادی و در ارابه های غیرمادی می رانند؟ شما اینها را روزی در بهشت خواهید دید اما به خادم الیشع قدرت دیدن آنها در روی زمین عطا شد.

از طریق این عطیه، فردی مومن می تواند روح شیطانی که کسی را پریشان می کند، و نوع آن را تشخیص دهد.

این عطیه نه تنها شامل دیدن عالم روحانی بلکه شامل هر نوع درک و دریافتی از این عالم می شود. شنیدن صدایی از عالم روحانی، مثلاً شنیدن صدای خداوند، نمونه ای از این عطیه است.

نهایتاً، این چنانچه برخی تصور می کنند، «عطیۀ تشخیص» نیست. آنهایی که ادعا می کنند این عطیه را دارند، برخی مواقع تصور می کنند که می توانند متوجه نیات دیگران شوند، اما عطیه ای که آنها دارند در واقع «عطیۀ انتقاد و داوری کردن دربارۀ دیگران» است. حقیقت این است که شما قبل از نجات یافتن این «عطیه» را داشتید، و حالا که نجات یافته اید، خداوند می خواهد که برای همیشه آن را از شما دور کند!

عطایای سخن (The Utterance Gifts)

1) عطیۀ نبوت: این عطیه توانایی ناگهانی و ماورایی صحبت کردن از طریق الهام الهی و به زبان شخص صحبت کننده است. می تواند همیشه با «بدین گونه خداوند می گوید،» شروع شود.

این عطیه، موعظه کردن و یا تعلیم دادن نیست. تعلیم و موعظۀ الهام شده شامل عنصر پیشگویی نیستند زیرا آنها توسط روح القدس تدهین شده اند، اما این دو در صریح ترین معنای خود، پیشگویی نیستند. بسیار رخ می دهد که واعظ یا مدرسی چیزهایی را از طریق الهام ناگهانی و بدون نقشۀ قبلی بگویند، اما این در واقع پیشگویی نیست، اگرچه به نظر من می توان آن را مبنی بر پیشگویی دانست.

عطیۀ نبوت به خودی خود برای تذهیب کردن، ترغیب کردن و تسلی دادن است:

اما از طرف دیگر آنکه نبوت میکند برای تقویت و تشویق و تسلی دیگران با آنها سخن میگوید (اول قرنتیان 3:14).

بنابراین عطیۀ نبوت ، به خودی خود شامل مکاشفه نمی شود. یعنی این عطیه چیزی را دربارۀ گذشته، حال و آینده آشکار نمی کند. اما چنانچه قبلاً هم گفتم،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در پیوستگی با یکدیگر عمل می کنند، و بیان معرفت و بیان حکمت می توانند از طریق نبوت انتقال داده شوند.

زمانی که می شنویم کسی در جمعی نبوت می کند و اتفاقات آینده را پیش بینی می کند، درواقع ما فقط پیشگویی را نمی شنویم بلکه کلام حکمت را از طریق عطیۀ نبوت می شنویم. نبوت معمولاً مانند خواندن کلام تشویق کنندۀ خداوند در انجیل شنیده می شود، مثلاٌ «در خداوند و در قدرت او محکم باشید» و «من هرگز شما را ترک نخواهم کرد

برخی معتقدند که پیشگویی های عهد جدید نباید مسائل «منفی» را در بر داشته باشند در غیر این صورت با مسئلۀ «تشویق و ترغیب و تسلی» تناسبی نخواهند داشت. اما این طرز فکردرست نیست. اینکه آنچه خداوند می خواهد به بندگانش بگوید را محدود کنیم و با وجود اینکه توبیخ و سرزنش لازم است، تنها شنیدن نکات مثبت را روا بدانیم به این معناست که خود را بالاتر از پروردگار می دانیم. سرزنش هم می تواند نوعی تشویق و ترغیب باشد. پیغام های خداوند به هفت کلیسا در آسیا، که در مکاشفۀ یوحنا ثبت است، شامل عنصر سرزنش است. آیا می تونیم آنها را کنار بگذاریم؟ من که اینطور فکر نمی کنم.

2) عطیۀ زبانهای مختلف و تعبیر زبانها: عطیۀ زبانهای مختلف توانایی ناگهانی و ماورایی صحبت به زبانی است که برای شخص ناآشناست. این عطیه معمولاً همراه است با عطیۀ تعبیر زبانها، که توانایی ناگهانی و ماورایی است برای برگرداندن هر آنچه در زبان ناشناخته گفته شده است.

این عطیه،در واقع تعبیر زبانها نام دارد نه ترجمۀ زبانها. بنابراین نباید انتظار ترجمۀ لغت به لغت از پیام ها به زبانهای مختلف داشته باشیم. به همین دلیل ممکن است «پیامی» کوتاه و تعبیری بلند و یا بالعکس داشته باشیم.

عطیۀ تعبیر زبانها بسیار شبیه به عطیۀ نبوت است زیرا به خودی خود شامل هیچ مکاشفه ای نمی شود و معمولاً برای تشویق و ترغیب و تسلی به کار می رود. تقریباً می توان گفت بر طبق اول قرنتیان 5:14، صحبت به زبانها به علاوۀ توانایی تعبیر آنها برابر با نبوت است:

اگر همۀ شما به زبان ها سخن گوئید خوشحالم، ولی ترجیح میدهم که همۀ شما نبوت کنید زیرا اهمیت کسی که نبوت میکند از کسی که بزبانها سخن میگوید بیشتر است ، مگر این که کسی بتواند سخن او را ترجمه نماید تا کلیسا تقویت شود.

چنانچه قبلاً هم گفتم، در انجیل هیچ دستورالعملی مبنی بر چگونگی استفاده از عطایای قدرت وجود ندارد، مطالب اندکی دربارۀ چگونگی استفاده از عطایای مکاشفه ثبت شده و آموزه های زیادی دربارۀ چگونگی استفاده از عطایای سخن وجود دارد. از آنجایی که سردرگمی زیادی در کلیسای قرنتیان در رابطه با استفاده از عطایای سخن وجود داشت، پولس تقریباً تمام فصل چهارده اول قرنتیان را به این مسئله اختصاص داد.

مهمترین مشکل، در مورد استفادۀ درست از صحبت به زبانهای دیگر است، زیرا همانطوری که در فصل مربوط به تعمید شدن در روح القدس متوجه شدیم، هر مومنی که در روح القدس تعمید می شود توانایی دعا کردن به زبانها را در هر زمانی که بخواهد، دارد. قرنتیان در برنامه های کلیسا بارها به زبانهای دیگر صحبت می کردند، اما بیشتر آنها نامنظم بود.

استفاده های مختلف زبانهای دیگر

(The Different Uses of Other Tongues)

بسیار مهم است که تفاوت میان استفادۀ عمومی و خصوصی زبانهای ناآشنا را متوجه شویم. اگرچه هر مومنی که در روح القدس تعمید شده باشد می تواند هر زمانی به زبانها سخن بگوید، اما این بدان معنا نیست که خداوند او را در عطیۀ عمومی زبانهای مختلف به کار خواهد برد. استفادۀ اصلی صحبت به زبانها در زندگی عبادتی خصوصی هر مومنی رخ می دهد. اما قرنتیان گرد هم جمع می شدند و ناگهان شروع به صحبت به زبانها می کردند بدون اینکه کسی حرفهایشان را تعبیر کند و البته چنین روشی هیچ کس را کمک یا تشویق نمی کرد (اول قرنتیان 6:14-12، 16-19، 23، 26-28 را ببینید).

یک راه برای متمایز کردن استفادۀ عمومی و خصوصی از زبانها این است که اولی را صحبت به زبانها و دومی را دعا کردن به زبانها بنامیم. پولس هر دو مورد را در فصل چهارده از اولین نامه اش به قرنتیان ذکر می کند. تفاوتها چه هستند؟

زمانی که به زبانها دعا می کنیم، روحمان در برابر خداوند مشغول دعا می شود (اول قرنتیان2:14، 14 را ببینید). اما اینکه کسی ناگهان با عطیۀ زبانهای مختلف مسح شود، پیامی از طرف خداوند برای جماعت داخل کلیسا است (اول قرنتیان 15:14 را ببینید) و اگر کسی آن را تعبیر کند، مردم معنای آن را می فهمند.

بر طبق کتاب مقدس، زمانی که اراده کنیم، می توانیم به زبانها دعا کنیم (اول قرنتیان 15:14 را ببینید)، اما عطیۀ زبانهای مختلف تنها زمانی عمل می کند که روح القدس اراده کند.

عطیۀ انواع مختلف زبانها معمولاً همراه عطیۀ تعبیر زبانها است. اما استفادۀ خصوصی از دعا کردن به زبانها معمولاً تعبیر نمی شود. پولس گفت زمانی که به به زبانها دعا می کند، عقل او بی ثمر است (اول قرنتیان 14:14 را ببینید).

زمانی که فردی به زبانها دعا می کند تنها خودش را تقویت می کند (اول قرنتیان 4:14 را ببینید)، اما زمانی که عطیۀ زبانهای مختلف به همراه عطیۀ تعبیر زبانها آشکار می شود، کل جماعت حاضر در کلیسا تقویت می شوند (اول قرنتیان 4:14-5 را ببینید).

هر مومنی باید هر روز به عنوان بخشی از رابطۀ روزانۀ خود با خداوند، به زبانها دعا کند. یکی از مسائل مهم دربارۀ دعا به زبانها این است که، در آن استفاده از عقل لازم نیست. یعنی شما می توانید حتی زمانی که مشغول کار دیگری هستید، به زبانها دعا کنید. پولس به قرنتیان گفت، «خدا را شکر که من بیش از همۀ شما به زبان ها سخن میگویم» (اول قرنتیان 18:14، همراه با تاکید). احتمالاً او زمان زیادی را صرف صحبت به زبانها کرده است تا تمام افراد کلیسای قرنتیان را شکست دهد!

پولس همچنین نوشت که زمانی که به زبانها دعا می کنیم، برخی مواقع «خداوند را سپاسگذاری می کنیم» (اول قرنتیان 16:14-17). برای من سه بار پیش آمد که کسی زبانی را که من به آن دعا می کردم متوجه شد. هر سه مرتبه من به زبان ژاپنی صحبت می کردم. یک بار به زبان ژاپنی به خداوند گفتم، «تو بسیار خوب هستی» بار دیگر گفتم، «بسیار از تو سپاسگذارم» و دیگر بار گفتم، «زود بیا، زود بیا؛ من منتظرت هستم» آیا جالب نیست؟ من هرگز ژاپنی یاد نگرفته ام، اما حداقل سه مرتبه از خداوند به زبان ژاپنی سپاسگذاری کرده ام!

آموزه های پولس برای صحبت به زبانها

(Paul’s Instructions for Speaking in Tongues)

آموزه های پولس برای کلیسای قرنتیان بسیار خاص بود. در هر گرد همایی تعداد کسانی که اجازه داشتند در جمع به زبانها صحبت کنند دو یا سه نفر بود. آنها نمی توانستند همه با هم صحبت کنند، اما باید صبر می کردند و به نوبت صحبت می کردند (اول قرنتیان 27:14).

منظور پولس این نبود که لزوماً سه «پیغام به زبانها» مجاز است، بلکه از نظر او در برنامه های کلیسا بیش از سه نفر نباید به زبانها صحبت می کردند. برخی تصور می کنند که اگر بیش از سه نفر معمولاً به زبانها صحبت می کردند، هر کدام از آنها می توانست تسلیم روح القدس شود و «پیامی به زبانها» دهد که روح می خواست در کلیسا مطرح شود. اگر اینطور نباشد، آموزه های پولس روح القدس را با محدود کردن تعداد پیام ها در گردهمایی ها، محدود می کند. اگر روح القدس هرگز بیش از سه عطیۀ صحبت به زبانها را به مردم حاضر در جمع نمی دهد، نیازی نیست که پولس چنین آموزه هایی به مردم بدهد.

همین مسئله در مورد تعبیر زبانها هم صدق می کند. برخی تصور می کنند که شاید بیش از یک نفر در جمع قادر باشد که تسلیم روح القدس شود و «پیام ها به زبانهای دیگر» را تعبیر کند. این افراد «مترجم» نام دارند (اول قرنتیان 28:14 را ببینید)، چرا که مدام از عطیۀ تعبیر زبانها استفاده می کنند. اگر این طرز فکر درست باشد، شاید این همان چیزی است که پولس در آموزه هایش زمانی که می گوید «كسي‌ ترجمه‌ كند» (اول قرنتیان 27:14) به آن اشاره می کند. شاید منظور او این نبود که تنها یک نفر باید همۀ پیامها به زبانهای دیگر را تعبیر کند؛ بلکه شاید علیه «تعبیر های رقابتی» همان پیغام هشدار می داد. اگر یک مترجم پیامی که به زبانی دیگر گفته شده را تعبیر کند، مترجمی دیگر نباید آن را تعبیر کند حتی اگر فکر می کند که تعبیر بهتری خواهد داشت.

به طور کلی، همه چیز باید «به درستی و به شیوه ای مناسب» در گردهمایی های کلیسا انجام شود، این گردهمایی ها نباید ترکیبی از صحبت های همزمان، گیج کننده و رقابتی باشد. به علاوه، مومنان باید حواسشان به افراد غیر معتقدی که در جمع حضور دارند باشد، همانطوری که پولس نوشت:

پس‌ اگر تمام‌ كليسا در جايي‌ جمع‌ شوند و همه‌ به‌ زبانها حرف‌ زنند و اُميّان‌ يا بي‌ايمانان‌ داخل‌ شوند، آيا نمي‌گويند كه‌ ديوانه‌ ايد؟ (1اول قرنتیان 23:14).

مشکل در قرنتس دقیقاً همین بود، همه به طور همزمان به زبانها صحبت می کردند و اغلب هیچ تعبیری در کار نبود.

آموزه هایی دربارۀ عطایای مکاشفه

(Some Instructions Concerning Revelation Gifts)

پولس دربارۀ «عطایای مکاشفه» و بازنمود آنها از طریق نبی ها، چند آموزه ارائه داد:

آن دو یا سه نفری که قرار است نبوت کنند صحبت نمایند. و دیگران در بارۀ گفتار ایشان قضاوت کنند، اما اگر مکاشفه ای به یکی از حاضران مجلس برسد آن کسی که مشغول سخن گفتن است ساکت شود. به این ترتیب شما میتوانید یکی بعد از دیگری برای تعلیم و تقویت همه نبوت کنید، زیرا عطیۀ نبوت باید تحت اختیار گویندۀ آن باشد، چون خدا، خدای هرج و مرج نیست بلکه خدای نظم و آرامش است. چنانکه در تمام کلیساهای مقدسین مرسوم است (اول قرنتیان 29:14-33).

افرادی در قرنتس بودند که عطیۀ تعبیر زبانها را داشتند و به عنوان «مترجم» شناخته شده بودند، بنابراین کسانی هم بودند که عطیۀ نبوت و مکاشفه داشتند و مردم آنهارا به عنوان «نبی» می شناختند. این نبی ها در سطح انبیای عهد عتیق و یا حتی در سطح اغابوس در عهد جدید نبودند (اعمال رسولان 28:11، 10:21 را ببینید). خدمت آنها محدود به اعضای کلیسای محلیشان بود.

از آنجایی که ممکن بود بیش از سه نفر از چنین نبی ها در گردهمایی های کلیسا حضور داشته باشند، باز هم پولس محدودیت هایی ایجاد کرد، به خصوص خدمت نبوت را به «دو یا سه نفر» محدود کرد. این مسئله نشان می دهد زمانی که روح القدس عطایای الهی به مردم می دهد، بیش از یک نفر ممکن است این عطایا را دریافت کنند. اگر این طور نباشد، آموزه های پولس مبنی بر تعداد نبی هایی که باید صحبت کنند، به محدودیت روح القدس منجرخواهد شد که در نتیجه اعضای بدن از برکات آن برخوردار نخواهند شد.

اگر بیش از سه نبی در جمع حاضر باشند، حتی اگر اجازۀ صحبت کردن نداشته باشند می توانند با نظر دادن دربارۀ آنچه گفته می شود کمک کنند. اینگونه توانایی آنها برای تشخیص آنچه روح می گوید مشخص می شود و معلوم می شود که آنها هم می توانستند در همان عطیه ای که مورد استفادۀ نبی های دیگر قرار گرفت، تسلیم روح القدس بشوند. در غیر این صورت می توانستند با اطمینان از اینکه پیشگویی ها و مکاشفه ها در توافق هستند با مکاشفۀ که خداوند خود داده است (مانند کتاب مقدس)، آنها را به طور کلی مورد قضاوت قرار دهند، کاری که هر مومن بالغی می تواند انجام دهد.

پولس گفت که این نبی ها یکی پس از دیگری می‌توانند نبوت کنند (اول قرنتیان 31:14 را ببینید) و اینکه «عطیۀ نبوت باید تحت اختیار گویندۀ آن باشد» (اول قرنتیان 32:14) نشان می دهد نبی ها باید از قطع کردن حرف یکدیگر پرهیز کنند، حتی زمانی که مکاشفه ای از روح القدس به آنها اعطا می شود تا با حضار کلیسا در میان بگذارند. این مسئله نشان می دهد که روح القدس ممکن است به طور همزمان عطایا را به چندین نبی بدهد، اما همۀ نبی ها باید زمانی که مکاشفه ای را دریافت می کند خود را کنترل کند.

این مسئله دربارۀ عطیۀ سخن هم که در شخص مومن ممکن است آشکار شود هم صدق می کند. اگر کسی پیامی به زبانی دیگر و مکاشفه ای از خداوند دریافت کند، می تواند آن را تا زمانی که فرصت مناسب پیش نیامده نگه دارد. بسیار اشتباه است که صحبت و تعالیم کسی را به خاطر گفتن مکاشفه ای که به ما داده شده، قطع کنیم.

زمانی که پولس گفت، «شما میتوانید یکی بعد از دیگری نبوت کنید» (1اول قرنتیان 31:14)، در مورد کسانی که نبوت را دریافت کرده بودند، صحبت می کرد. متاسفانه برخی سخنان پولس را خارج از فحوای کلام در نظر گرفته می گویند، هر مومنی می تواند در همۀ گرهمایی های کلیسا نبوت کند. عطیۀ نبوت زمانی داده می شود که روح اراده کند.

امروز، مانند همیشه کلیسا به کمک، قدرت، حضور و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نیاز دارد. پولس به قرنتیان تعلیم داد که «همیشه در پی محبت باشید و در عین حال مشتاق کسب عطایای روح القدس و مخصوصأ عطیۀ نبوت باشید» (اول قرنتیان 1:14). این نشان می دهد که سطح خواستۀ ما با آشکار شدن عطایای روح ارتباط دارد، در غیر این صورت پولس چنین دستورالعمل هایی نمی داد. خادم شاگرد ساز، که می خواهد توسط خداوند و برای جلال او مورد استفاده قرار بگیرد، در واقع با شور و شوق خواهان عطایای معنوی است و به شاگردان خود نیز تعلیم می دهد که چنین کنند.

181

Day 146 – Jesus’ Final Words and Ascension to Heaven

Matthew 28:16-20; Mark 16:15-20

Daily Devotionals for Families

On one of the occasions when Jesus appeared to the eleven disciples in Galilee, He told them what He wanted them to do for the remainder of their lives. It would be their job to make disciples of all the nations. The Greek word translated “nations” could be better translated, “ethnic groups,” which is a group of people who are distinct from other groups by virtue of their culture, circumstances, language or the location where they live. For example, many Americans think that all Chinese people are part of the same ethnic group, but there are many different minorities living in China. America itself is made up of many ethnic groups, and God wants us to make disciples among them all. In order for that to happen, someone from one culture has to purposely cross over a cultural line, showing love for people who are different. At present, there are thousands of ethnic groups in the world without a single Christian among them. No one is trying to reach them with the good news of Jesus Christ. If a person within one of those un-reached groups wanted to find out about Jesus, he would have to cross a culture to find out. Our prayers and money should be directed toward those un-reached groups of people. And if God sends us to one of them, we should go.

Notice also that Jesus doesn’t want just converts made; He wants disciples. Disciples are true believers in Christ; thus they are obedient followers. Jesus said they should be baptized, which would be the first indication of their true faith, and that they should be taught to obey His commandments. Of course, one of those commandments which they should teach their disciples was the commandment Jesus gave for disciples to make disciples. Every true believer in Christ should be doing what he can to make disciples. That is not a job that God has given only to pastors.

From Mark’s Gospel we learn that there should be certain supernatural signs that follow those who believe. Jesus listed five. The first one is that they will cast out demons in His name. Every believer has the authority to cast out demons if the need arises.

Second, Jesus said that believers would speak in new tongues. According to the pattern found in the book of Acts, speaking in tongues is something every believer should expect to experience when he is baptized in the Holy Spirit.

The next sign Jesus mentioned was the safe handling of poisonous snakes. He certainly did not mean that Christians should pass around poisonous snakes during church services, because that would be the same as testing God, and there is no record of such a thing being done by the early church in the book of Acts. However, Luke did record that Paul was once accidentally bitten by a deadly snake and suffered no harm. That is more likely the kind of thing Jesus had in mind. He knew that snakes might bite those who would be carrying the gospel to remote places.

The fourth sign Jesus mentioned is probably in the same category. Jesus promised no harm to believers who drank poisonous liquids. As they take the gospel to other places, believers might accidentally drink something poisonous, or unbelievers might intentionally poison their water. In those cases, believers could claim Jesus’ promise.

The fifth sign that should follow believers is the healing of others as they lay their hands upon them. This does not mean that every single sick person upon whom a believer lays his hands will be healed. But it does indicate that God wants to use all believers in healing others. In the context of Jesus’ command to preach the gospel to everyone, this fifth sign should also be considered an aid to effective evangelism. Divine healing can get people’s attention to listen to the gospel. We read in the very last verse of Mark’s Gospel that God worked with the first disciples by confirming their words with miraculous signs. No doubt many of those signs were the five that Jesus listed, and the record of the book of Acts proves this to be so.

Q. Jesus promised His disciples that He would be with them always, even to the end of the age. Soon after He made that promise, He left them to sit at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Did He break His promise?

A. No, Jesus didn’t break His promise. He only departed physically. However, spiritually He now lives within every believer. That is why Paul wrote, “I myself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Galatians 2:20). Besides that, God is omnipresent, which means His presence is everywhere. In that sense, Jesus is always with us as well.

Q. In Mark’s Gospel, we read that everyone who believes the good news about Jesu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Does this mean that a person who believes in Jesus but who dies before being baptized goes to hell?

A. No, it does not. However, it does indicate to us that true believers in Jesus will want to obey Him, and since He commanded all who believe in Him to be baptized, people who profess to believe in Him but who refuse to be baptized prove their faith is not genuine.

Application: As believers, our job is not just to wait for the time we’ll go to heaven but, our job is to work for Jesus, helping to expand His kingdom. Are you doing something to help?

DMM Chapter 17: The Gifts of the Spirit

Below is the 17th chapter of The Disciple-Making Minister broken up into individual articles for easier reading.